
올해에 선교론적 교회론에 관한 책들을 읽고 관점을 형성하고자 읽은 세 번째 책이다. 이전 두 권의 책과 다른점은 성서신학적 관점에 충실하게 유배적 모티브를 사용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교라는 담론을 보다 넓은 시야로 보게 합니다.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보게 해줍니다. 그러면서도 목회자인 저자의 실천신학적 서술은 상황화를 비껴가지 않고 몰입해서 읽게 합니다. 현 시대의 개신교 상황이 구약과 신약속에 이미 투영되어 있고 보다 넓고 깊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에스더, 느헤미야, 다니엘, 에스라, 요나, 베드로 등을 이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게 해준것은 다소 신선합니다.

배움만 있고 재미가 없으면 지루하고 지속성이 없듯 홀리만 있고 놀리가 없으면 인간미도 생기발랄함도 없게 되기가 쉬운 듯 분위기 싸해질 듯 누군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매일 예배만 하고 기도만하고 산다고 생각한다면 상상력이 매우 빈곤하고 무료한 듯 하다 Edutainment 화 하듯 Honoly한 공간과 모임을 만들 수 없을까 보다 참신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좀더 창의적인 상상력으로 반영한 온라인 공간과 관계를 만들 수는 없을까 공동체 인터페이스 구축을 위해 오랜시간 논의하고 추진하면서 고민이 깊어간다

아이처럼 얼마전 친한 목사님께서 공다루는 운동할때 어깨에 힘들어가면 삑사리 난다는 말에 폭풍공감을 했드랬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나잇값을 하려고 어깨듵도 아닌데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이들수록 어른스러워져 가야겠지만, 어린아이처럼 되라는 그분의 말이 귀에 솔깃해 집니다. 천진난만하고 유치하고 순수하고 울기도 많이하고 호기심도 많고 잘 믿어주고 잘 놀고 항상 재밌는거 찾아놀고 엄마 아빠에게 응석도 재롱도 잘 부리고 . . . . . 그렇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어른스런 아이의 모습보단 힘빼고 아이스런 어른이 되어갔으면 그런 새 해가 되었으면 뜨는 해를 보며 소박한 소원을 빌어봅니다.

우환(憂患)과 백신(Vaccine) 딸이 어제, 지나가는 말로 코비드19 사태가 종식되면 뭘 젤로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도 별 생각없이 몸이 힘드니 평소 밥먹듯 하던 수영, 지인들과 만남과 입털기, 여행, 등등을 말했다.아쉽게도 그런 일상의 회복은 꽤 오래걸릴 듯 보인다. 우한에서 첫 보고된 코비드19(D624G)가 백신이 접종되는 이 시기에도 우환이 들게한다. 변종 바이러스(영국 B.1.1.7 ,남아공B.1.351 ,브라질P.1)때문이다.변종 바이러스를 위한 또 다른 백신이 필요할 가능성이 대두될 수 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러면, 각종 감기바이러스의 데자뷰가 될 듯 하다. 우환이 근심이라는 뜻 외에, 병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정말 우환인 코비드19와 섣부른 이별통고 대신 환우(병친구)삼고 꽤 오랜시..

새 해가 시작되었지만, 많은 것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마음이 팍팍한 듯 하네요. 우연히 듣게된 노래 한 곡이(시간에 기대어) 마음을 촉촉하게 합니다. 그 가사를 모티브로 삼아 제 느낌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마음들이 촉촉해 지셨으면... 시간을 견디며 북극의 찬 공기에 얼어 붙은 강 점점 얼음장 두꺼워져 고요한 강물 얼려세우고 흐르던 시간의 강물 북극의 시간으로 돌려버린 계절 빙하기를 건너온 생명들처럼 엄혹하고 냉혹한 이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 세월의 강을 건너갈 수 있을까 차디찬 강 저편 산에 따스한 봄날 화사한 꽃이 피듯 살아 생기 돋을 수 있을까 그저 하루 하루 일상의 시간을 눈썹위로 거친 숨에서 나온 온기로 눈꽃 피우며 앞서 걷는 이들과 더불어 걷는다 시간을 견디고 견디며

예전에 객관에 대해 읽은 글 중에 오래도록 남는 말이 있었다. 주관을 꿰뚫는 객관 그 객관을 꿰뚫는 주관 그런 주관을 가지려고 조금은 노력했다. 오늘 그것을 새롭게 읽는다. 객관을 뒤집으면 관객 주관을 뒤집으면 관주 인간의 온기와 따뜻한 손잡기와 눈길이 없는 기계적 객관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관객으로 퇴행할 뿐 자기를 넘는 이해와 이타성과 자기희생 없는 주관은 한 치도 자신을 변화시키지도 벗어날 수도 없다. 관주 관종으로 퇴행할 뿐 관객을 넘어서는 객관 관주를 넘어서는 주관 관객과 관주를 넘어서는 관계적 객관과 주관 혼연일체된 관계속에서 객관과 주관은 제모습을 찾아가고 자라간다. 덧, 죄가 분리란 의미와 로마서의 연합된 죽음과 부활의 의미,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에 대해 관계적 객관과 주관의 ..

코딱지 만한 작은 집 유난히 담장도 낮고 문턱도 낮았던 집 장사치도 걸인도 연약한이도 추한이도 심지어 악한이도 맘편히 들어가고 싶고 들어갈 수 있었던 곳 가장 맘속 깊은 곳을 내보이며 울며 토로할 수 있었던 그 곳 어느날 부터 높아진 담장 높여진 문턱 높아진 시선 부담스럽게 비대해진 집 가기가 꺼려지고 통과하기도 힘든 문턱선 어쩌다 겨우 통과해도 버티기 힘든 곳 안나가게 되어버린 곳 점점 높아만 가는 문턱선 철옹성처럼 되어가는 그 곳 낮은자들이 설자리를 잃어가는 곳 작은집과 너무 달라진 집 달라진 집의 무게를 넘어설 수 없었던 집 아이러니하게 아스라이 그분의 집에서 멀어지고 사라져가는 별로선 표정선 문턱선이 높은 그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