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결에 내려 맺힌 빛물결은 윤슬 공기의 습기가 맺힌 물방울은 이슬 오늘처럼 빗방울이 맺히면? 검색해도 없으니 비우자를 붙여 우슬이라 지어본다. 우후죽순을 약간 변경해서 우후목엽,우후초옆을 떠올려본다.비온뒤 더 짙푸러지겠지.나뭇잎, 풀잎위에 맺힌 우슬이 영롱하다. 윤슬처럼 뿌려져 우슬처럼 맺힌 새벽이슬을 먹고 척박하고 더운 중동의 돌담틈새에서 자라는게 우슬초다. (왕상4:33)박하과에 속하여 허브처럼 향신료나 차, 약초로 쓰이기도 한다.1m쯤 자라고 줄기는 단단하다. 잎은 줄기에 바로 붙어 있고,가지와 잎에 작은 털이 많이나고 작은 흰꽃들이 피어나서 수분을 잘빨아들인다. 아마도 낮에 뜨거워진 돌틈에서 바싹 말랐다가 , 새벽녁 식은 돌틈사이로 수분많은 지중해 공기가 지날때 맺힌 이슬을 조금이라도 더 머금기에..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인 고 박경리 선생은 한 해의 마지막이 넘어가는 날 한 번씩 창자가 끊어지듯이 울었다고 한다.일찍 남편과 아들을 가슴에 묻고서 힘든 여성작가로서 글 작업에 매진하면서 마음속에 온갖 아픔들을 꾹꾹 누르고 있다가 토해낸 것인 듯 하다. 그런 후에 새 해가 되면 감옥생활 같은 글 작업을 꾿꾿하게 해나갔다고 한다. 아마도 토지의 여주인공인 서희는 그런 울음소리가 형상화되어 만들어진 듯 하다. 그 울음소리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마음속의 고통을 토해냄, 밀릴대로 밀려버린 감정과 복잡한 심내의 처리,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솔직한 인정, 여기서 엄출 수가 없다는 결의 다짐 등등이 담겨 있을 듯 하다. 그 울음소리는 1969년 부터 1994년까지 26년에 걸친 대하소설 토지의 완결로 묵직한 울림..

올해 여름 교회에서 계시록을 강의한 후 가을에는 시편을 읽고 싶었었다. 이미와 아직의 긴장속에 사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시편에 담겨있는 듯 보였다. 구약의 삼분의 일이 시이고, 시편은 하나 하나는 짧지만 가장 긴 구약이기도 하다. 그렇케 시편을 읽다가 시편 51편이 깊이 다가왔다. 한 책을 읽다가 자기발견을 깊이 하게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0여년전에 시편 51편을 읽으며 인간에 대해, 공동체에 대해, 그분에 대해 깊이 성찰하며 깊은 참회를 했던것도 다시 떠오르며 조용히 참회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이번에는 조르쥬 루오의 ''미제레레''(58편의 판화작품 .시편 51편의 불가타 라틴어 번역 성경의 첫마디가 ''Miserere 불쌍히 여기소서''인데 이를 모티브로 만들었다고함) 그림을 보니 더 생생하게 시편..

어제 파주 마장호수를 갔었다. 산정호수에 비해 감흥이 적었었다.그런중에도 눈길을 끈 것이 호수가변에 푸른잎을 드리운 버드나무였다. 12월까지는 잎이 푸르다는걸 알고서 얼마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전시회가 용산 국립박물관에서 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우리조상들은 세월과 시류에 변치않는 기상을 기르고자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세한삼우곧 매화나무, 소나무, 대나무를 수묵화로 그렸다고 한다. 김정희의 세한도는 수묵화로서는 별로라고 한다. 또한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 전통적인 배치도 아니다. 그러나 그림속에 ''댓글''처럼 달린 글들이 그림을 보물처럼 값있게, 빛나게 만든다고 한다. 제주 유배의 힘든 시기를 보내는 그에게 후배 이상적이 책을 꾸준히 보낸것에 대한 추사의 마음이 담긴 글귀도 그림에 있다.''..

계시록은 22장이나 될 정도로 적지가 않다.내용도 다른 성경부분을 읽듯이 비교적 무난하게 읽기가 용이하지 않다. 어떻게 계시록의 의미를 살리면서 압축해서 읽을 수 없을까? 리처드 보컴선생의 계시록은 주기도문 전반부 기도의 실현이라는 견해를 기초로 친근하게,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하게, 쉽게, 매일 매일 기도하 듯 읇조릴 수 있을 듯 하다. 계시록을 공부하고 곱씹어 보면서, 이 견해가 왜 세계적인 신학자의 입에서 발설되었는지 깊이 수긍하게 된다. 주기도문 전반부를 기도문으로 적으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게 하소서'' 이렇케 된다. 그런데 이 주기도문을 계시록의 이미 와 아직의 현실속에 사는 우리의 처지를 반영하여 ..

하브루타는 친구, 동료라는 하베르에서 유래한 말로 두명에서 네명이 서로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유대인들의 학습법을 의미한다. 서로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면서 자신의 아는바를 객관화하고 체계화하며 심화시키게 된다.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과정자체가 큰 배움이다. 교회에서 내일부터(6;28) 다섯번에 걸쳐서 요한계시록을 강의하기로 했다.전공자도 아니라서 얼마나 내용있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브루타 하는 마음으로, 공감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하고지 한다. 사실 계시록 전공하신 존경하는 이철규원장님께 배울때도 많이 배웠지만, 강의 준비하면서 새롭게 배운 것도 많다. 교우들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많은 배움이 있을 듯 하여 부담이 되면서도 기대가 있다. 벌써 종총님이 코로나시대의 요한계시록으로 강의한다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