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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다른 길로 오신다 (류호준 교수님)
북리뷰1  "일상의 기쁨"

이 글은  담임목사님이신 김상훈 목사님께서 류교수님의 싸인이 담긴 책을 주신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싸인 값???으로 간단히 북리뷰를 써서 폐북에 올릴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들어가는 글을 읽고서 차근 차근 음미하며 소화된 내용을 몇 꼭지로 정리해서 올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가복음이 역사책이라는 점, 누가가 의사라는 점, 길이라는 메타포가 주제어라는 점 등등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요즘 중세 종교개혁관련 책들을 시리즈로 읽고 있어서 더욱 끌렸을 수도 있습니다. 또 교회 수련회관련해서 사도요한의 기록인 요한복음, 요한서신,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묵상정리하고 있어서 관심이 더 갔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생명은 기쁨이라고 하는것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p327)

전체 글은 어떻게 쓸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주제는 분명합니다. "기쁨"이 그것입니다. 그동안 누가복음을 많이 읽었었지만 간간히 "기쁨"에 대한 글은 읽었어도 전체를 "기쁨"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려는 생각은 한번도 한적이 없었습니다. 서신서중 빌립보서가 "기쁨의 서신"이라는 말은 들어서 기쁨이 사라질때 종종 읽기는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그렇게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올릴 글들은 "기쁨"시리즈가 될 것 같습니다.
얼마전 중세역사의 전문가인  최종원 교수님의 어깨에 올라가 종교개혁 전후 역사를 잘 여행하고 왔는데, 이번에는 류호준 교수님 어깨에??? 올라가서 누가복음을 두루 두루 여행하고 올 생각을 하니 설레입니다.

오늘은 첫번째로 "일상의 기쁨" 입니다.

류교수님의  책은  너무 많은데,  그 동안 몇 권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아모스서, 아버지를 떠나 자유를, 시편강해,일상행전,시시한 일상이 우리를 구한다 등등 입니다. 그리고 얼마전 부활절에 월드비전과 함께 만드셨던  고난주간 말씀인 "거룩한 멈춤" 입니다. 그리고 포스팅해주시는 글들을 비교적 자주 읽어왔습니다. 제가 시를 쓰는  관계로 "거룩한 멈춤"은 한편 한편이 신학시를 읽는 느낌이어서 지금도 출근시 가지고 다니면서 음미하며 읽고 있습니다.

이번 누가복음책은  조금 긴 "산문시"를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반 강해서와는 다르게  절제된 언어와 전체 글의 구도가 너무 잘 들어왔습니다. 저는 처음에 전문 강해서나 신학서를 내시는 것 못지 않게 쉬운 일상의 언어지만 의미를 함축한 글을 많이 쓰시고 내시는 것을 의아해 했었습니다. 그점이 일반적인 신학자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었습니다. 그것은 일상생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일상의 언어를 함축적으로 자유 자재로 의미를 담아서 구사하는 것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누가복음 문예,신학적 서술이 담긴 책은 일상의 언어로 일상 한가운데로 다가온 복음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시시한 일상, 반복되는 일상, 유한한 일상, 소멸되는 일상, 헛헛한 일상, 깨어진 일상, 탄식하는 일상, 짓눌린 일상,구조가 뒤틀어진 일상속으로 다가온 "기쁨의 소식"이 인문학적인 감수성이 듬뿍 담긴 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녀가 없는 노년의 사가랴부부, 메시야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베드로의 어느날 텅빈 그물, 십자가 사건으로 절망하는 제자들의 거처로,  예루살렘을 떠나 가는 제자들의 길에 다가가 결코 쉽지 않지만 단어자체는 매우 쉬운 일상의 언어로 일상의 쉽지 않은 순간에 다가서는 주님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전체 구조가 긴 기다림후의 기쁨으로 시작해서  절망중에 부활의 기쁨을 맛보고 부활승천과 재림의 소망의 기쁨, 사도행전 , 더나아가 요한계시록까지 내다보게 하는 것은 결국에는 "기쁨"이 일상을 회복하고 근원적인 회복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게 하는 것을 강력하게 전망하도록 해줍니다.

강영안 교수님은 "일상의 철학"(곧 IVP에서 리뉴얼 되어 나온다고 하심)에서 일상의 5가지 특징을 언급하셨습니다.필연성, 유사성, 반복성,평범성, 일시성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상성이라 할지라도 일상이 유지되면 좋은데, 사실  잘 유지되는 듯 하다가도  쉽께 깨지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저도 2년전 이것을 깊이 경험하였습니다. 일상이 깨지는 것을 말입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은 노년에 몸의 불편을 겪으면서 중국 속담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젊은 날에 윗분으로 모셨던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명성을 날리던 분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한때의 빛나던 재능도 다 소용 없구나. 서글픈 마움이 들었다."
제가 몇 일전 97세의 저의 어머니를 뵙고 왔을때와  비슷한 느낌의 글입니다.
또 그렇지 않다고 해도 유한성내에서의 일상성이라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와 절망을 할 수 밖에  없고 죽음이라는 절망의 문앞에 다가설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상성앞에서 기쁨이라니... 쾌락주의자가 되라는 것인가? 진실하게 서면 비관론자가 될 소지가 다분한 것이 아닌가 ? 하는 솔직한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 누가복음은 일상성 속에 기쁨이 다가오는 것을 반복적으로 전해 줍니다.
찬찬히 이 책을 음미하며 읽다보면 평범한 일상에도, 때로 깨어진 일상에도 신비한 기쁨이 평범한 일상처럼 다가오게 될 것 입니다. 저의 아들이 읽으면서 잔잔한 기쁨을 얻고 있다고 전해주는 것을 보면
조금은 확신을 하게 됩니다.

끝으로 제가 전에 다니엘의 샘에서 교수님을 뵙고 지은 시, 오늘 지은 시, 이전에 지은 시 ,세 편을 올리고 이번 글은  마무리 하겠습니다.



다니엘의 샘        소엽    이학상

제국의 강가옆  흘렀던 작은  샘
마를 듯 마르지 않았고
탁한 강물에 쓸릴 듯 쓸려가지 않으며

제국너머의 가치와 이상과 기상을 흘려보낸 샘

다니엘이 마셨으며
제국에 굴종하지  않는 삶의 방식대로  
살게한 샘

긴 시간과 공간너머
백운호숫가  옆 동산에
다시 잇대어 흐른다

정갈한  신앙의 유산
암반처럼 다져진 신학에
걸러서 한 방울 한 방울  흘러나오는 샘물

듣는이의 속을 시원하게
눈을 맑게
세상너머  본향향한
순례길 걸어갈 새힘을

그곳에는
서른세가지 물중의  물
추로수보다
더 귀한
샘물이 흐른다



사연             소엽    이학상

세상에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픔
슬픔
억울
분노
침울
해후담긴 곡절들

각본 없이
닥친
사연으로
지구는
오늘도
돌고 돌고
또 돌아버린다


긴 하루      소엽  이학상

하루 이십사시간 86400초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하루의 시간
때론 빠르게 때론 더디 흐른다.

천년이 하루같은 날은 기쁜날
하루가 천년같은 날은 숨막히는날

비난이 쏟아지는날,몸이 몹시도 고통하는날,
사랑하는이들의 외면을 받는날,도움의 손길이
끊어지는날.

오늘하루 이날을 맞이한 누군가의 가슴엔 시간이 참 갑갑하게 흐르는 날

그날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하루가 천년을 너머
영겁으로 흐르는 그분을 바라볼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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