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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4: 종교개혁, 중세에서 근대로의 역사적 대전환


먼저 이번 리뷰는 책 내용을 서머리 하듯 정리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일부 인용하고자 합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저의 주관적인 관점이 많이 들어간 글임을 (이번에는 특히 전공관련 관점)혜량해 주시고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종교개혁의 배경사와 결론부를 읽고 북리뷰를 두 개 했기에  , 한 두개만 더 북리뷰 간단히 하고 마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교수님께서 중간부분도 흥미진진한 내용이 있을 거라고 해서 읽다보니  그러했습니다. 나라별로 진행되는 종교개혁이야기가 대하드라마 보는 듯 했습니다. 또한 등장하는 인물들의 서사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왕, 사, 남 만큼의 울컥하는 내용들도 여럿 있었습니다.그래서 생각을 바꾸어서 3편 정도의 리뷰를 지난번처럼 길게 쓰고자 하게 되었고 , 오늘이 그 첫 번째 입니다.

원래 한 꼭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 광기와 우연의 역사(원제: 인류의 별이 빛나는 순간)"를 차용해서  쓰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는 역사라는 것이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고 , 그것은 광기와 우연과 같은 주제일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우연"과 "광기"와 연관된 내용들이 등장을 하였습니다. (p52 우연한 길을 통해 역사의 전환이 이루어졌다.p92 노예사냥 관련, 가톨릭교황이 촉발한 이 공인된 광기를.p128  자신의  죄책을 떠 넘길 대상을 찾았을때 광기를 품고 유대인들을 공격했다.p466 프랑스의 한 젊은 변호사가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길에 전쟁으로 길이 막혀 우연히 제네바를 우회하게 되었다.etc) 딱히 광기와 우연이라고 표현이 되지 않았어도 그와 유사한 장면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제로 쓰기에는 책 내용을 곡해할 수도 있고 , 너무 책 주제와 동떨어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을 좀 하다보니 책에 일관되게 나오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배제, 폭력, 박해 등등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마무리 하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p632 "국가와 종교 정체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폭력적 정화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수용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유럽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병리 현상이었다."또 마녀사냥과 탈주술화 꼭지에서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p861 ... 마녀사냥은 근대적 형태의 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 발생한 병리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나온 "병리 현상"이란 단어는 사실 역사적 서술 단어로는 매우 이례적인 단어입니다만 제 전공영역에서는(치의학) 아주 친근한 단어입니다." 병리학"이나 "병인론"등이 따로 연구되고 공부하고, 모든 치료행위의 기본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각설하고  "병리현상"과 "광기"가 묘하게 연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두 단어의 연결점을 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습니다.  이례적인 역사적 서술을  병인론과 병의 증상, 그리고 치료라는 관점으로 정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물론 핵심 내용은 사회병리학류의 서술이 되겠지만.

그러면서 떠오른 단어 하나가 "오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3가지 중의적 의미로 상정했습니다.  보통 서삼독(書三讀)이라 하는 말이 있는데 이는 책과 저자와 자신을 읽는 것을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세상읽기와  실험적 읽기를 추가해서 "오독"으로 명명해 보았습니다. 여기에  잘못 읽었다는  의미의 오독(誤讀) 과 다섯가지 독(毒)이라는 의미를 추가해 보았습니다.

이 세 가지 의미의 오독을 기초로 앞서 언급한 종교개혁의 지역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던 "배제와 폭력적 정화"라는 "병리현상 " 그리고 더 나아가 극단의 폭력인 전쟁현상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병리현상 (혹은 병의 증상)에 대하여***
병은 반드시는 아니지만 대략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통증 , 발열, 부종, 등등이 있게됩니다. 종교개혁의 역사 기록에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든, 위로부터의 개혁이든 가리지 않고 맨 마지막 정리글은 항상 이런 병리 현상으로 귀결된다고  서술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제가 정리한 포스팅을 참조하시거나 책을 구입하여 읽어 보시면 더자세히 알게 되실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벽돌책이라 부담이었는데 읽어가다보니 가독성도 좋고 서사가 많아서 재미가 있었습니다. 개신교의 모습에 대해 뿌리로부터의 파악이 어느정도 되실 것입니다.)

이에 대해 몇 곳만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 p331 루터 탄생 500주년이 되는 1983년, 독일 프로테스탄트 총회는  유대인에 관한 루터의 후기 저서를 "재앙"이라고 선언했다. p332루터의  반 유대적 발언과 유대인에 대한 폭력적 공격은 깊은 애통속에서 인정해야 할 죄악입니다. 그리고 현재나 미래에 유사한 죄악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교회 안에서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p408 종교가 지나치게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까워질 때 국가를 넘어서는 가치를 추구할 수 없는 국가주의에 매몰된다. 종교가 정치와 적절한 거리두기에 실패할 때, 자신들이 설정한 이념의 테두리에 들지 못하는  존재는 배제와 박해의 대상이 된다.p458아나뱁티스트를 탄압하고 이데올로기로 규정한 세력은 이교 제국 로마가 아니라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을 신봉하는 국가들이었다. 그들을 폭력과 광신이라고 규정하는 주류의 시각은 400년 동안 이어졌다. 20세기 들어 아나뱁티스트들은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 평화와 무저항이라는 또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p501이것이 다른 종파와 달리, 칼뱅주의가 지나친 호전성의 혐의를 벗지 못하는 이유이다. 칼뱅주의의 국제적 확장은 칼뱅의 교리를 전투적으로 현지 교회에 적용하려는 갈등 속에서 이루어졌다. 저항과 내분, 내전은 칼뱅주의에 피할 수 없는 요소였다.p678 국민국가 형성과 민족주의 강화라는 유럽적 현상에서 종교는 두려움과 본보기 처벌을 매개로 개인의 일탈을 방지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만들고자 했던 순결하고 순수한 믿음과 민족으로 구성된 " 상상된 공동체"는 현실에서는 억압의 공동체로 실현될 뿐이었다.p757 더 명확한 진리를 붙들고 종교의 불순물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프랑스 가톨릭과 위그노가 벌인 종교 갈등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계몽주의와 세속화를 촉진하는 토양이 되었다.

위의 정리된 내용을 다시금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하면 이러합니다. 유대인에 대한 불관용과 압제, 차별, 공격, 살인, 추방등이 있었다.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핍박과 배제, 공격이 있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에 수십년에 걸친 동족 상잔의 내전이 있었다.  농민 봉기에 대해 무차별적인 살육과 공격이 있었다. 일상생활의 감시와 규율 , 가혹한 종교재판이 진행되었다.
분별이라는 이름하에 가혹한 배제와 차별, 폭력이 있었고, 그 배후에는 왕과 국가라는 , 민족이라는  권력이데올로기가 신성불가침의 이데올로기로 강력하게 작동을 하였다.

***병리현상의 원인론에 대해서***
병리현상이 곧 병인 것은 아닙니다. 병의 원인을 파악을 해야 병리 현상에 대한 이해가 있게 됩니다.(간략한 예로 치주질환의 병인론에는 다음의 세 가지 팩터를 기준으로 판별을 합니다. 미생물 요인(Microbial factor), 숙주 요인(Host factor), 환경요인(Enviromental  factor) 입니다. 쉽게 말해서 원인균, 환자 개인의 특이성, 그리고 몸안과  구강내 구조 ,생활 등등의 관점에서 원인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 모든 것을 병리학처럼 다룰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술한 내용을 기반으로 약간의 추론을 가미해서 정리하고자 합니다.

위의 병리 현상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 합니다. p216 인문주의의 성과는 종교개혁을 "위한"것이 아닌 중세 말 그리스도 세계의 "일부"였다. 이 하나의 흐름이 교차점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두 줄기로 갈라졌다. 인문주의가 중세와의 연결성 속에서 나온 것처럼 종교개혁 역시 중세와의 연결성 속에서 나왔다. 뒤집어 말하자면 , 이 말은 인문주의가 그리 인간성에 대한 혁명이 아니었던 것만큼이나 종교개혁도 인간 해방의 운동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인문주의에서 배태된 종교개혁은 곧 유럽의 자국 중심주의, 더 나아가 배타적인 유럽 중심주의 시각을 강화하는데 일조했다.

기본적으로 중세적 관점과 정치적 상황의 반영을 할 수 밖에 없는 데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인문주의나 종교개혁자들에게 시대를 초월하여 무엇인가 만들기를 바라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며 실망을 하게 하는 지점이라는 것입니다. 양심의 자유이니 종교적 관용이니 종파적 자유라느니 정치적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니 등등의 것은 애초에 다다를 수 없는 지점이라는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들도 결국에 신학과 교리를 조금 바꾸었을지는 모르지만 , 그것을 지탱하는 구조는 가톨릭의 그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범위와 상황만이 다를 뿐이지 똑같은 것을 반복 재생산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이 가톨릭 교황체제에는 정치의 최정점에서 그런 모습으로 작동하였다면, 종교개혁 후에도 개별 군주와 민족과 나라의 정치구조에 충실하게 순응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강제하는 방편으로 작동하였다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견해입니다.

그 지점에서 종교가 작동을 할때 성서와 그 밖의 저술에 대한 오독(誤讀)이 있게 되고 강력한 신념으로 행동하게 하는 기제로 작용을 하는게 나타납니다.  루터의 농민봉기 진압 독려문이나 프로테스탄트들의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박해에서 그런 점이 보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차대전시기 독일의 나찌에 대한 독일 가톨릭과 루터교, 프로테스탄트 등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유대인에 대한 가혹한 제거로 또 다시 작동되는 것이 나타난다고 저자는 강조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 구교 전쟁으로 잔혹하고 긴 폭력이 전개되는 것도 그것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배태된 점도 있지만 그것을 밑바닥에서 추동하고 이론화 하고 이끄는 것은  오독으로 인한 종파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전쟁에 개입이 되면 얼마나 지독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지난한 싸움이 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병인론으로 돌아가서 이런 모습들은 민족적 기질이나 상황, 정치적 조건, 밑바닥 정서등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 양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각 나라별 종교개혁사를 보면 일반적으로 가정했던 상식들이 여지없이 부서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영국이 다르고 프랑스가 다르고 스페인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병에서 환자의 개별성과 독특성이 있듯이, 나라별로 정말 다양한 병의 징후가 보이게 됩니다.
이것은 나중에 치료와 회복의 과정도 다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을 예상하게 해줍니다.

*** 병인론에 따른 이차적 병의 진행***
애초에 병의 원인을 안다고 해서 병을 금새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의 원인도 문제지만 그로인해 파생된, 어찌보면 병적인 상태로 적응해버린 악화된 상황도 만만치 않은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역기능으로 작동하는 병적인 상태를 해결하고서야 본 병의 원인을 치료하기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경우를 저의 영역(치과)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이책에서는 이점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서술된 역사적 팩트들을 기반으로 그것을 추론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병의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 이차적 병의 진행 양상을 저는 다섯가지 독소적 역기능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편향, 게토화, 일방적 분별, 배제와 차별, 다층적 폭력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루터가 이신칭의의 신학적 깨달음을 적용하여 가톨릭에  문제제기를 하고 대립하던 시기를 지나서 , 정치권력, 군주, 민족등과의 관계에 대한 편향이 발생을 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세력의 게토화가 있게 되고, 그네들의 일방적 분별이 작동하고 그에 기초한 배제와 차별이 있고  다층적 폭력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듯이 보였습니다.
물론 다른 메커니즘이나 프로세스로 설명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조금씩은 다를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위의 다섯가지 독소적 역기능들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병리현상의 치료***
병이 있고 원인을 알고 독소적 역기능을 이해했다고 해서 치료가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오랜 노력과  경우에 따라서는 행운도 따라주어야 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역사책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책과 연관된 이전의  저작과  이 책과 함께 나온 "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에서 치유의 퍼즐들을 어느정도 유추할 뿐입니다. 그 점에서 전작읽기는 이 책의 적용편이라고 봐도 될 듯 합니다.

이번 북리뷰에서는 가장 기본이 되고 시작점이라고 저자가 거꾸로 읽는 교회사에서 (2025, 5,12 발간)언급한 "책 읽기"라는 퍼즐의  창으로 들여다보는 치유의 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내용은  "거꾸로 읽는 교회사"중 8번째 꼭지인 "루터와 한나의 "읽는다는 것" (읽기는 해방을 향한 첫걸음이다) 참조하였음.) 이 책에서 최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p131종교는 불변하는 교리와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는 권위로 구성된 공동체다.p133 천 년의 중세 가톨릭을 쪼개 놓은 이 혁명은 루터의 성경"읽기"에서 완성되었다. 제도 교회가 정해 놓은 해석의 틀을 넘어 자신의 언어로, 자신만의 자의식으로 성경을 읽은 것이다. 종교개혁은 주체적으로 글을 읽은 데서 비롯된 "언어 혁명"이다.p144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읽히는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뒤바뀌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법정스님) p145 루터의 종교개혁에는 주체성과 책임 의식을 갖고 읽어 내는 법을 배우라는 엄중한 속뜻이 있다. 개인적, 사회적 사건과 트라우마를 마주할때, 누군가 큰소리로  제시하는 손쉬운 답을 찾기보다 복잡한 층위를 스스로 읽어 나가는 품을 들여야 한다. 그것이 루터와 한나가 했던 "읽는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진정한 해방을 위한 첫걸음이다." 제대로 읽지 않으면 읽히게 된다는 법정스님의 글을 제 워딩으로 하면 이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대로  읽어가지 않으면 자신이 읽히게 되고 결국에는 강제로 읽힘을 당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생각처럼  확신에 차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이과생의 언어로 위에서 언급한 서오독(書五讀)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을때, 책내용을 읽고, 저자를 읽고, 자신을 읽고, 세상을 읽고, 실험적으로 읽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과정은 어찌보면 앞에서 언급한 다섯가지 독소적 역기능을 순기능으로 만드는 해독을 거쳐  정독(精讀)으로 나가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언제 이런 말을 들은적이 기억이 납니다. 정신과 선생님들은 환우들을 보기전에 먼저 자신의 정신분석을 받고 일정부분 조정같은 치료를 거친후에 환자를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 개념으로  앞에서 언급한 다섯가지(그 이상일 수도 있음) 독소적인 역기능이 이미 자신속에도 자리잡고 있는지 살펴보고 가능한 해독이라는 과정을 거친후에 정독으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책읽기는 자기중심적인 편향된 시각을 강화하고  그 이후의 독소적 역기능을 강화하는 작업이 될 수 밖에 없기때문입니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청어람과 같은 곳에서 함께 일고 나눔을 하는 것은 매우 좋은 과정인 듯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글과 느낌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적 읽기의 큰 유익을 저도 이번에 22분의 글을 접하면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청어람 책읽기 강추)

다섯가지 독서를 통해  다섯가지 독소적 역기능을 해독하고  오독을 바로잡고  더나아가 정독을 통해 종교개혁자들의 초기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종교개혁 50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유의미한 작업인 듯 합니다. 어찌보면 그것이 프로테스탄트들의 기상이요 정수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번 청어람 공동 책읽기 모임에서 나눔을 할때 공통적으로 느끼셨던 내용은  "종교가 배제와 차별과 공격과 폭력이 되는 것이 너무 무섭기도 하고 , 이게 뭔가 하는 깊은 고민거리를 준다는 류가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화해와 평화의 십자가인데 , 그것이 어느 순간에 "공격하는 칼"이 될 수도 있는 역사적 사실 앞에  깊은 돌아봄이 있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만 하더라도 이번 공동책읽기는 큰 유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류의 책읽기등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도 작은 변혁의 씨앗들이 뿌려진다면 저자가 이책을 저술한 오년간의 노고가 유의미하고 더나아가 종교개혁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메타내러티브에 크고 작은 이야기로 자리매김했듯이  우리들 각자의 이야기도 한 자리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끝으로 공동책읽기 나눔에서 나온 고민들을 담은 짧은 우화를 써봤습니다. 또  종교개혁자들, 인문주의자들,  종교개혁에 등장했던 수 많은 이름없는 별이된 사람들  ,그리고 최교수님을 생각하며 지은 시를 올려 봅니다.  

     십자수      featured  by  cross     소엽 이학상

유럽 중세 그림전이  서울 명당 성당에서 열렸다. 유독 한 그림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림은 유화도 아니고  퀼트처럼 짜인 헝겁조각들이 조각보처럼  다양한 색감으로 모아져  하나의 그림처럼 되어 있었다. 조각보에는 유독   핏빛을 띤 다양한 열십자 모양이 수 놓아져 있었다. 예서체 십자무늬,  휘어진 나무 십자모양도 있었다. 언덕을 그린듯한 조각보에는 핏빗깔 나는  철십자 모양의 작은 십자무늬가 유난히 많았다. 그림을 호기심으로 뚫어지게 보다가 그만  그림속으로 상상속에서 빨려들어가 버렸다.

여기가 어디지? 요즘 유투브에 많이 나오는 시간 여행 드라마 속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림속 시간, 중세의 시간으로 유체이탈 한듯 가 있었고 인터스텔라의 다차원뷰를  보는 것 같았다.

뾰쪽 솟은 중세성당건물 옆에 한 마을이 보였다.그 마을은 대대로 다양한 십자가를 만드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철을 정교하게 잘 다루어 다양하고  수려한 철십자가가 유럽곳곳으로 팔려 나갔다. 특히 무슬림 몇 집과 유대인 몇 집, 그리고 조금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의 세공은 철십자가를 명품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렇케 대대로 오손 도손 웃음꽃 피며 평화롭게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날 ,왕실 비서실에서  사람이 나와 촌장을 만나 전했다. 앞으로는 철십자가만 만들고, 그것도 작은 칼모양으로 아래 긴부분을 날카롭게 만들라고 했다. 그리고 유대인과 무슬림과 프로테스탄트들을 마을에서 추방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전쟁시  부족한 칼을 대신하기 위해서고, 미래의 적을 추방해 후환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을시 마을을 없애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마을엔 날벼락이었다. 가톨릭인 촌장은 각 집의 대표들을 모으고 의논에 의논을 거듭했다. 갑론을박의 격렬한 의견들이 오갔다. 이 기회를 잡자는 가톨릭 집들의 의견도 있었고, 어떻게 십자가로 칼을 만드냐고  말하는 집도 있었다. 고성이 오가고 멱살을 잡고 싸우기도 했다.그러면 애들이 울고 부인들이 울며 뜯어 말겼다. 그날은 온 마을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난뒤  마을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그들중엔  절대로 십자가로 칼을 만들 수는 없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유럽과 다른 대륙으로 흩어졌다.나중에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 마을은  가톨릭만 남아 철십자가 칼을 만들었고, 조금 먼 곳으로 갔던 프로테스탄트 집들도 그곳 군주의 명대로 철십자가 칼을 예리하게 만들었단다. 무슬림은 원고향으로 가서 철십자가칼 대신  왕의 명대로 진짜 검을 만들고 살았다. 유대인은 돌아갈 고향이 없어 떠돌이처럼 이곳 저곳을 돌며 방랑자들  신세가 되었다고  전해졌다.(지금은 2000년 유랑의 트로마로 인한것인지도 모르는 안전,security 에 대한 집착에서 나오는 광기어린 전쟁과 살육을 벌이는 아이러니라니..,)

조각보위에 핏빛이 도는 철십자가는 사실 철십자가 칼이었다.  그것에 당한 사람들을 보고 무명의 사람이 한땀 한땀 피눈물을 흘리며 오랜시간 수놓은  핏빛 물들은 조각보 그림이었다.

나는 곧 현실에 돌아왔다. 높이 솟은 명당성당 첨탑위   십자가가 갑자기 십자가칼로 보였다. 순간  무엇엔가 찔린 듯 움찔했다. 속으로 조용히 되뇌였다.   "아무리  그래도 십자가를 칼삼아 사람을 찌를 수는 없지. 그분이 달리셨던, 달려야만 했던 그 십자가로....."



글                         소엽 이학상

누군가는 백지에 애써
글을 새기고
누군가는 안광으로
그 글자를  머리와 가슴과
두 다리에 다지고
책읽기는 서오독으로 이어지고

책읽 끼들 모여  내를 이루고
천이 되더니 시대의 흐름에
모여 도도한 강이 되어 흐른다

변화의 대해 향한 꿈은
때로 물울음을 내며
깊이와 폭을 더하며
소망의  현실을   대지로
당기고

마침내
드디어
변혁의
대해에 다다르네

그 물은
증기되고 응결되어
또 다시
대지  어딘가에
변혁의 씨를
품은
이슬비로
내리더니
피보다 진한
글을
사람들 가슴에 새긴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다음에는  종교개혁에 등장했던  사람들을 추모하는 Memorial  Music 을  만들고 , 관련 글을 쓰고자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회를 담은 글로 리뷰를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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