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비드19 사태가 예상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기화 되리라는 불길한 조짐과 보고들이 나오고 있다. 요기까지, 요기까지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도 또다시 언제까지라는 의문부호가 여전히 남는다. 이런와중에 날씨가 더워지면서 K94 마스크보다 훨씬 저렴했 덴탈마스크가 거의 동급이 됐다. 이유는 숨쉬기가 편해서이다. 산소를 조금더 들이 마시기 때문이다. 오월 첫 주 휴일에는 집에만 있었던 답답함,갑갑함을 해소하기위해 야외로 많이들 나갔었다. 산소보다는 갑갑한 가슴을 달래기 위함인 듯 하다. 상처가 깊거나, 고통이 누적되거나, 구조적인 압박감, 말도 않되는 모욕감, 개선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 주는 숨막힘은 어디서 해소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어디론가 피하는 것도 일차적인 도움은 되지만 장기적인 도움엔 미약하..

감수성(感受城)feat by 선한 사마리아인 감수성(減數城)도 한때는 감수성(感受性)이 뛰어난 관료들이 많이 있던적이 있었다.성의 백성들의 배고픔을 기가막히게 알아채서 사비를 털어 멕이는 먹방국장, 부하들집의 숫가락숫자까지 헤아려 자기 녹봉을 깨서 더챙겨주는 더불어장관,집이 없어 헤매는 유랑민들을 위해 거쳐를 마련해주던 포크레인 총리등이 있을때는 성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대고 활기가 넘쳤었다. 성주는 몇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관료들, 백성들의 든든한 지지속에 자기지위를 지킬 수 있었다. 수십년이 흐른 지금, 감수성(減數城)은 점점 사람들이 적어지더니 성의 활기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이름처럼 되었다.주변의 철옹성, 봉쇄성, 폐쇄성,배타성,수구성 등도 사정은 비슷했다. 주변성주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해봐도 이유를 ..

역사의 시간 아침 수영후 야산 둘레길에서 햇밤을 주웠다.올해도 어김없이 자연의 시간은 흘러 열매를 주었다. 매일 반복되는 듯한 소소하고 평온한 일상의 시간이 지겹다가도 ,두려움, 혼돈, 불안, 고통의 시간을 맞이하면 그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그런 순간이 오면 시간은 더디가고 때론 멈춘 듯이 보인다.대체로 그런 시간은 우연히 오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크든 작든 ,의미있는 것을 해보려다 부닥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하다. 조금더 큰 역사의 시계추를 옳은 방항으로 돌려지게 하기 위해서 때로 누군가는 한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갑갑한 시간을 견뎌야 할때도 있다. 역사의 시간은 그 단위가 크든 작든 그런 사람들의 시간위에 흘러온 듯 하다. 몇해전 지인의 부모님집이 홀라당 불에 타고, 폐친은 재정적인 큰 손해를 보..

on,off mix 지난 3월은 평년보다 130% 달린 듯 하다.예전에는 그렇케 달리면 뭔가 꽉차게 산 듯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낀다. 여유가 없구나, 너무 정신없이 사는구나, 무에 그리 빨리 가려고 그리사나... 이런 느낌이다. 이럴때면 의도적으로 심리적 여유의 공간과 시간을 잠간이라도 만들어 보려고 한다. 매번 가던길도 빠르게 가기보다 조금 돌아서 간다. 달리는 전철안에서도 철로변에 피어나는 꽃의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꽃피는 소리가 어디있겠느냐마는 마음의 여유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귀기울이면 나지막하게 꽃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기도 하다. 환청인가? 아름다운 화음인가? 적어도 아직은 환청과 화음은 구별이 되어 다행이다. 이 시즌에만 들을 수 있는, 오랜시간 준비된 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