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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칼뱅 평전 전체리뷰

美親세상 2026. 7. 3. 06:26

#칼뱅리뷰
1.책을 읽기 전에 갖고 있던 "칼뱅"에 대한 지식 , 이미지와 이 책을 읽은 후에 새롭게 발견한 칼뱅의 이미지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책을 읽기 전에 칼뱅에 대해서 정식으로 평전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칼뱅에 대한 이미지는 장로교의 초석을 놓은 사람, 기독교강요를 쓴  신학자, 조금은 딱딱하고 율법스런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 있었다. 이 책을 일고 난 뒤에 그가 법학도이지 정식 신학을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놀라게 되었다. 더구나 그의 신학이 망명자였던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으며 적응의 신학으로 계속 업그레이드 되었음을 보고 그의 신학이 정지된, 변화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계속 현실속에서 정치하게 정합성을 갖기 위해 변해갔음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칼뱅은 프랑스 사람의 기질을 , 현실성에 기반한 논리를 가지고 살았고 그것을 현실세계에 구현하고자 애쓰다 보니 콩시르투아르 같은 것을 고안하게 되고 다소 억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을  보이고 치리에 집착한 그의 모습이 그 사람을 율법스럽게 느끼게 하였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루터 보다는 조금은  더 다가온 프랑스인이었다.

2. 장 칼뱅이라는 인간의 가장 큰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것을 장 칼뱅이라는 사람이 프랑스인이라는데서 찾게 됩니다. 그는 경험론자인 섬나라 사람인 영국인과 다르고, 독일의 관념론자들과도 다르고 프랑스인의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론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점이 그의 신앙여정이나 신학서적이나 설교등에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봅니다. 제가 이런 현실에 기반한 것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런 점들이 장점으로 보였습니다.
단점은 루터보다는 그래도 사람들을 관용하고 포용하려고 했기는 했는데, 역시나 그 범위가 너무 좁았고, 한번 찍은 사람은 꼭 공격을 해댔다는 것 같습니다. 신학의 형성이 현실성을 반영했다면 그의 내면성도 그러해야 하는데 내면성은 역시나 글과 말과는 너무도 괴리를 느끼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종교성의 견지에서 보면 그에게서는 따스하고 온화하고 포용하는 듯한 얼굴의 이미지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물론 그의 시대상황과 처한 위치를 감안하면 참으로 어려웠었겠다는 마음은 들지만 말입니다.예수의 모습은 정녕 볼 수가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짙게 남습니다.

3. 칼뱅은 신학자이자 개혁자로서 화려한 업적과 대비되는 고난과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연약한 육체나 망명객(난민)으로서의 정체성 같은 것인데요. 이런연약함은 칼뱅의 신앙과 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전체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다가온 한가지 단어는 "적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프랑스인의 현실에 기반한 철저한 논증과 글의 서술은 루터와 츠빙글리와 여타 종교개혁자들과 다른 신앙과 신학을 노정하게 하는 듯 합니다. 저는 기독교강요가 이런 망명객과 같은 처지의 이땅의 순례자의 노정을 그리고 그것을 격려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글에 깊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나그네와 같은 , 망명객과 같은, 떠도는 구름과 같은, 초대교회의 디아스포라와 같은, 정처없이 이리 저리 안정감없이 고난의 길을 가야하는 상황에서 나온 신앙과 신학이라 아직까지 살아남은 듯 합니다. 저도 한번 그런 관점에서 기독교강요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또한 그가 썼던 성경주석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친우가 중앙아시아에서 선교사로 사는데, 네스토리안(동시리아 혹은 동방정교가 정식명칭임) 신앙 내지는 신학도 바로 실크로드를 따라 복음을 전파하고 살았던 것에 기초하고 있다.
칼뱅은 늘 옆 고국 프랑스를 그리워하고  프랑스의 복음화를 갈망했고 도왔던 삶을 살았다. 그의 신앙과 신학이 이 세대에 유의미함을 갖는 지점도 그것에 있다고 본다. 정주하지 않는, 안정화를 꾀하지 않는 망명자, 나그네, 디아스포라의 신앙과 신학의 정신을 갖고 사는 것 말이다. 정주와 안정을 꾀했던 노아의 후손과 아브라함의 정처없는 삶의 궤적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결국 이스라엘도 가나안에 들어가 비슷한 경로로 갔지만 말이다. 나도 지금 상황이 다소 나그네적인 처지의 삶을 살고 있기에 이것이 깊이 다가오고 조금더 깊이 들여다 보고 칼뱅처럼 체계화해서 친우와 나누고 싶고 네스토리안 후예들을 멀리서나마 돕고 싶다.

4.칼뱅만큼 오늘날 한국 교회에 영향을 끼친 신학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삶과 신학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얻어야할 비판적 평가와 계승해야 할 요소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칼뱅의 신학이 이땅에 잘 전수되고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주로 미국선교사들의 신앙배경이 그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원류를 살펴보면 미국으로 간 청교도들이 결국은 칼뱅의 영향을 받아서인 것 같다.  장로교는 그 태생이 이런 핍박과 고난과 망명객, 나그네 같은 상황에서 피어난 것이다.  그것을 전해준 선교사들도 그와 같은 삶을 살면서 전해준 것이다. 그 알짬이 되는 것을 놓치면 겉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일제시대때 삼일운동까지만 해도 민족적 정기를 거스르지 않고 돋우는 신앙이었는데, 일제의 핍박속에 사그라들고  현실타협적인 신앙, 내세로 기우는 신앙으로 가더니  1930년대에 신사참배로 거꾸러지게 되고 , 그 이후에 현실정치와 밀접하게되고 현실속에서 안정과 정주를 많이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한다. 전쟁후 북쪽에 있었던 목회자 신학자 신앙인들이 남에서 자리잡은 후 이어진  분열과 경도된 신앙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또 칼뱅이 귀족들과 왕정자체를 반대하지 않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금과옥조처럼 여긴 것은 루터와 같았고 중세적인 관념이었는데, 이점을 비판적으로 다시 정립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콩시르투아르같은 치리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지만, 적어도 사회윤리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제직들에게는 조금더 엄격한 잣대로 최소한의 치리를 해야 하지 않나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칼뱅 이후 500여년이 흐른 지금 그의 망명객의 신학은 새롭게 재조명될 필요가 있고 그 원알갱이를 다시 현실속에서 적응된 모습으로 살아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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