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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신학 크로키 북 리뷰1
앞으로 몇 회가 될지 모르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우선 독립연구자로서 이만한 참고도서와 이만한 짜임새로 독특하게 쓴 이 책이 더 많은 이들의 손에 들어가 읽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 하나는 루터와 칼뱅의 평전을 읽다보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다가갔던 로마서와 바울에 대해 다시한번 그들의 각도에서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1장, "바울에게 하나님에 대해 묻다 ."입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의 유용한 점은 억지 주입식이 아니라 저자 스스로도 질문자의 입장에서서 책을 서술해 간다는 점입니다. 또 각장이 끝날때마다 간단한 정리와 함께 내용들을 다시금 질문지를 달아서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하고 정리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신앙도서에서는 많이 봐왔지만 신학서적에서 이렇게 한 것은 보너스와 같았습니다. 올해 초에 강영안 교수님의 "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강의때 강교수님과 식사하며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강교수님은 본인이라면 의문이나 질문이 있을때, 설혹 그것이 매우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게 되는 질문일지라도, 혹자들은 , 아니 대다수 사람들이 그것을 피하거나 금단의 장소로 막아두려 하는데, 본인은 그속으로 들어가서 답을 찾고 그 의혹과 질문을 해체?해 버리시겠다고 하셨고 , 그렇케 살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전통이 바로 어릴적 고신계통의 교회에서 배우고 습득한 것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전통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창세기만 보더라도 사단의 질문은 매우 위험한 생각을 유발하고 결국은 위험한 지경으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시편과 욥기만 보더라도 위험한 질문들이 많이 나옵니다. 신앙의 길을 가다보면 이런 위험하고 난해하고 답이 없을 것 같은 질문들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저도 지금의 저의 처지와 상황에 대해 , 더 나아가서는 지나온 삶의 과정에 대해서 그분께 나름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씨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이 어디로 이끌지는 모르지만 그 질문을 회피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특별히 이 책은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소 인문학적인 것과 당시의 시대적인 역사적 상황들을 살펴보면서 지리한 신학적 작업들을 보다 생동감 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은 Top down식 보다는 Bottom up 서술과 같아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반가운 책입니다. 이 책의 전체적인 중심을 "질문들"에 방점을 두고 읽어 나간다면 어쩌면 저자의 관점뿐 아니라 어느지점에서는 저자의 관점을 넘어서서 새로운 내용들과 조우하는 즐거움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바울에게 하나님에 대해 묻는 것에 대해 저자의 글을 조금 정리합니다. p20 바울의 하나님 이해에는 나름의 독특한 점이 있는데, 이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을 통해 획득한 것이다. 바울 신학의 두 가지 전제: 유대성과 임박한 종말.바울이 신뢰하고 선포한 하나님은 유다이즘의 신이라는 것이다.p21 이와 더불어 바울은 생애 대부분을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확신하며 살았다. 달리 말해 , 서기 50-70년경에 이 세상이 완전히 종료될 것이라는 신념을 품었다. 하나님의 심판대는 희미한 미래가 아니라 임박한 결산이었다.p23 우리의 담론이 자칫 관념적 사변으로 흐르려고 할 때마다 이 두 특징을 환기하고"바울신학"이 이러한 시대적 맥락의 산물임을 상기하여 그의 말에 비평적 거리를 설정해 두어야 한다.p24 바울은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없다. 유대인 바울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는 사실이었다.p25 바울의 하나님 이해에서 더 중요한 점은 바울이 하나님의 존재를 묻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을 "행동하는 분"으로 묘사한다는 사실이다.p26 이러한 관찰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하나님이 계신가?" 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는 것이다.그것은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 "하나님은 나와 어떤 관계를 맺기 원하시며, 그 관계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시는가?"이다. 존재의 증명보다 관계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p31 갈라디아서 4장 9절:인식 주체의 역전 p32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관계에서 누가 먼저 주도권을 행사하는지를 명확히 밝히려는 시도다."오히려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신바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선제적 주도권을 강조한다.p33 이러한 인식 주체의 역전은 바울 신학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다."앎"의 토대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앎의 대상이 아니라 앎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주체라는 의미다.
p34 마리옹의 현상학: 포화된 현상과 "라도네" p35 근대에 이르러 형이상학이 인식론의 우선성과 결합하면서, 존재가 인식된 존재로 환원되고 축소된다. 마리옹은 이를 "존재-신-학"의 오류라고 비판한다.p36 이러한 접근 방식을 극복하고자 마리옹은 "포화된 현상"개념을 제시한다. 현상학에서 "지향"은 의식이 어떤 대상을 향해 의미를 구성하며 나아가는 작용을 가리킨다. 직관은 그 대상이 실재로 인식에 주어지는 정도를 가리킨다. 보통의 경험에서는 우리가 기대하고 개념화한 만큼만 대상이 주어진다.p37 포화된 현상은 "지향과 직관 사이의 구분은 유지되지만, 빈약한 현상이나 일상적 현상과는 반대로, 개념이 예견하고 보여 줄 수 있는 직관을 넘어서며 스스로를 내주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포화된 현상은 우리가 이해할 준비를 하기 전에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경험이다. 마리옹은 이런 압도적인 경험을 받는 사람을 프랑스어로 "라도네"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주어짐에 내맡겨진 자"라는 의미로 " 부여 받은자, 넘겨진 자,온전히 내준자"를 가리킨다.p38다시 말해 ,계시는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사건이다. 마리옹도 분명히 말하듯이 ,"수용은 수동성을 함축하지만 능동적 역량 "또한 요구한다.p39 카니의 해석학: "존재할 수 있는 " 하나님p41 우리가 만들어 놓은 개념적 틀을 깨고 들어오시는 분,예측할 수 없는 새로움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카니는 이것을 은총의 놀라움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은총은 예약되지 않고 불청객처럼 도착해서 집 전체를 재배치한다.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은 "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분"이다.
p44 현대적 언어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 문제에 다가가 보자. 행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우선 "결단"하면 , 다시 말해 일종의 도약을 감행해 자신의 안위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이로부터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자라나고 튼튼해진다.p45 하나님이 우리와 상관없이 먼저 사랑의 행동을 하셨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알 수 있고,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실재"요, "실체"가 될때만 하나님의 존재는 물론이고 , 그분의 사랑도 "확실히 증명"되었음을 , 우리에게 확실히 납득되었음을 알 수 있다.p46 하나님이 새 창조를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실재를 전적으로 변화시켜 재구성하신다는 의미다."하나님의 세상"이라는 영역 혹은 장에 들어가야만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무엇이 실재하는지 판별할 수 있다. p47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세상"이라는 세계 안에 거하면서 그곳에서 만물을 바라 볼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바울의 경우에는 이스라엘의 경전과 유대인의 경험에서 반복해서 들었던,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이야기 안에 머물러 살았다. 그 이야기 세계가 바울에게 현실이고 실재였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이야기에 푹 잠겨 살면서 그 이야기를 구성하는 "문법"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p49 또 바울은 하나님의 "계심"과 더불어 하나님에게 희망을 걸 수 있음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p50 하나님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그 행동을 우리의 관계성 속에서 인식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 관심이어야 한다.p53 바울은 다른 신, 아니 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과 비교할 때 압도적 힘을 지닌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특별한 힘에 주목한다. 그 힘은 바울이 설파한 "행동하는 하나님"의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p54 하나님의 변혁적 힘 p58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신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보다는 삶과 생각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이에 대해 바울은 소망을 하나님에게 둘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p59 기독교가 다른 "교"와 다른 점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온전히 투명하게 드러났다고 믿는 다는 것이다.어느 학자가 말한 것처럼 "바울의 기독론적 유일신론은 유대적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초월한다. p60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그대로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예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예수, 다음 글의 주제다.
일장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두 가지가 마음에 남는다. 하나는 수학의 공리적 공식과 같은 것일지라도 , 너무 큰 덩이의 내용을 가진 것일지라도 다시 되새김하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장에서 엄청난 내용과 덩이를 담고 있는 "바울의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
나도 "하나님 담론, 존재의 질문"을 던져 보기는 했어도 "바울의 하나님"이라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 보지는 않았는데 , 그런 질문을 던져 봐야 겠다는 것이다. 뭐 이런 것이다. "요한의 하나님", " 베드로의 하나님", " 누구 누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등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재미 있고 유익할 것 같다.
또 한가지 다가온 것은, 장 -뢱- 마리옹의 포화된 현상과 "라도네"라는 개념과 리처드 카니의 "존재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서술이었다. 내가 지난해 부터 경험하고 있는 것들을 선명하게 개념적으로 설명해 주어서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그것을 더욱 갈망하고 선명하게 구하려는 소원이 생겨났다. 강의 듣고 오는 날 그로 인해 가슴벅찬 느낌을 받았었다.
저자께서 장-뢱- 마리옹을 언급하면 좀 있어 보인다는 농담을 하셨는데, 있어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무엇인가 느낌을 전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참으로 프랑스인 칼뱅처럼 프랑스인들은 시의 적절한 언어를 실감있게 잘 구사한다. 관심이 가는 프랑스인들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번 특강에 간 이유가 종말론의 현실성을 의미있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 하려면 "시간"과 "공간"의 초월성을 이해해야 하는데, 바울이 로마서 6장에 다룬 연합한 죽음과 부활에 잇대어서 그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고 싶었는데, 이 책에서는 바울의 종말론은 다루지를 않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바울은 임박한 종말, 서기 50-70년 사이에 새 세상이 도래할 것을 믿고 살아서 계시록의 종말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 않았더라도 임박한 종말을 생각하며 "오늘을 그날처럼" 산 것은 역설적인 의미가 있게 다가온다. 더불어 저자가 다음번에는 "시간"에 대한 책을 스케치하고 있다고 하셔서 은근히 기대감을 가지고 왔다. 일장에서 다음장 "예수"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 듯이, 다음에 나올 "시간"에 대한 책이 기대가 된다.
덧:p59하단 믿다는 것이다. 오타. 오타의 저주는 여기서도 ㅎㅎㅎ
질문에 대한 시 하나 올립니다.
질문들 소엽 이학상
살다보면
돌부리처럼
질문들이 솟아나
이런곳에 꼭 태어나야 했을까?
나만 생고생인가
왜 어리고 연약한자들이 고통당할까
밥은 꼭 먹어야하나
그분은 코가 있을까
왜 나만 이런걸 느낄까?
걸려 넘어질지언정
의문부호같은
돌부리는 캐야지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비록
허접한 이유일지라도
혹시 알아
어떤이에겐
그게
광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너가
우리들이 그랫듯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은 지난 주 담목님의 터키 초대교회 탐방 사진입니다. 눈이 시원해지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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