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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2: 종교개혁, 중세에서 근대로의 역사적 대전환

이번에는  이 책의 결론부라 할 수 있는 21장, 22장을 읽고 정리한 것을 올립니다.(전체 내용 정리는 표정훈 출판 평론가의 한겨레 기고문 "정결과 순수의 이름으로 탄압하고 배제한 종교개혁"에 잘 되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북리뷰1을 하면서 페북에 올릴 것으로 하다 보니 글이 너무 짧고, 내가 받은 느낌을 잘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리뷰2부터는 제 블로그에 편하게 , 길게? 쓰고, 시간되시는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이 글에는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다소 많이 양념처럼 들어간다는 점 혜량해 주시고 아량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 북리뷰는 책의 내용을 따라가기는 하지만 심리적인(제가 2년간 상담심리 주마간산격으로 공부했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책을 읽어온 내력으로) 관점에서 정리하였음을 참조 바랍니다.

책의 결론부인 21,22 장을 읽고 들어온 첫 생각, 단어는 "똘레랑스"(tolerance)였습니다.

"똘레랑스"(  혹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상호합의)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고홍세화 선생이 프랑스에 망명해서 택시운전사를 하며 난민처럼 떠돌다 귀국해서 지은 책을 설명하는 글이었습니다. 20년세월동안 프랑스살이에서 체화된 이 단어는 당시에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었고 , 제 귀와 눈에 들어오게까지 되었습니다. 책을 읽지 않아서 구체적인 사례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의미와 맥락만큼은 잊지 않아서 , 이 단어가 이 책의 결론부와 오버랩되어 떠오른 듯 합니다. 홍세화선생의 입국후의 삶의 궤적을 간간히 접하면서 , 그를 평가한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보면 말뿐인 것은 아니고 그 단어의 무게감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약에 홍선생이 영국으로 망명을 했다면 , 저 단어의 무게감을 그만큼  느끼지 못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은 종교개혁과 그 후의 피바람을 어느정도 피했고, 프랑스 대혁명시기의 피의 혁명을 존웨슬리를 비롯한 사람들의  일정역활로 피해갔기 때문입니다.(이 주장은 대학때 역사전공했던 김학* 선배의 역사소개로 죄금 아는 정도임. 이 선배를 통해 함석헌의 성서적 입장에서(섭리로) 본 조선 역사(후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한길사)나왔는데  원본을  수정, 편집되어 있음.조금 아쉽기는 함)을 접했고, Edward Halle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등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위인전기나 역사서를 즐겨 읽게 만들어준 선배 입니다. 이 선배는 독일에서 중국 인물인 이* 연구로 학위를 받고 , 아내분인 법대 선배는(정금*) 쾰른에서 법학 학위 받으심. )

홍선생이 말한 똘레랑스라는 단어가 그 분에게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온 것은 수백년에 걸친 역사의 시간과 경험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똘레랑스는 종교개혁기의 전쟁과 박해,  프랑스 피의 혁명기를 거쳐 제도화, 정착되었는데,  이제는 제도적 미덕 이전에 살아내야할 삶의 미덕으로 진척되었으며,갈등을 전제로 한 민주적 공존의 윤리로까지 발전하였으며, 20세기 파시즘과 홀로코스트를 겪으면서 생존의 조건으로 여겨지게까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시금 종교, 극단주의등으로 인해 계속 시험받는 가치가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16세기 종교개혁기 대립과 내분,  17세기 종교전쟁이 그려지고 있습니다.똘레랑스의 씨앗이 뿌려진 토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세기까지 그리스도 세계에서 종교적 관용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그리스도교 통치자들은 "하나의 제국, 하나의 법, 하나의 신앙"이라는 모토로 통치해 왔다. 또한 카톨릭교회는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그리스도로, 그리스도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카톨릭교회라고 보았다. 그러던 것이 프로테스탄트의 등장으로 균열이 가게 되었으며 이는, 종교적, 정치적 , 민족적 대립과 갈등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종교개혁의 중심지 였던 독일에서 내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갈등과 대립, 싸움으로 머물지 않았다.

종교개혁을 카톨릭교회의 개혁이라는 긍정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나 그리스도교의 특정한 종파만을 인정하고 타 종교와 종파를 배제하는 것을 정화로 이해하는 것은 종교개혁기 유럽 그리스도교가 가졌던 유럽주의적이고 종파적인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카톨릭은 프로테스탄트를 , 프로테스탄트는 카톨릭을,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모두는 아나뱁티스트를 박해했다.  통치자는 통치자대로 한 국가 내에서 다양한 종교의 공존 가능성을 받아들이기까지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했다.(  pp905)  인상적인 것은 프로테스탄트들은 개혁의 가치를 내건 이후 카톨릭교회로부터 받은 박해에 대해 양심의 자유를 호소했지만  타인의 종교의 자유를 방어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거짓교회와 맞서 싸우는 유일한 진리라는 확신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범주에 들지 않거나 거부하는 이들을 이단자로 박해하고 처형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1531년 스위스의 종교 분열을 확정한 제 2차 카펠화의, 1555년 신성로마 제국 내에서 종교적 공존을 인정한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이 시작된 1517년 이후 정확히 100년만에 유럽전역에서 신, 구교 30년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내재된 갈등과 대립은 전쟁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대략 이러하였다.주요 전쟁지역이었던 독일은 대부분의 지역이 황폐화되고 인구는 삼분의 일로 줄어 들었다.독일의 분열은 고착화되었고 200년이 지난후에야 겨우 통일 국가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나뉘었다.1590년대 서유럽과 중부 유럽의 약 절반이 프로테스탄트였지만 ,1690년에는 그중 오분의 일만이 프로테스탄트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pp  890)
이 과정에서 종교의 자유에 대한 개념이 유럽에서 점진적으로 등장한 것은 1600년 무렵이었다.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한 수용이 유럽사회의 기본값이 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이다.

무엇보다 이 전쟁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결은 되지만 그 이후 종교적 신앙은 공적인 자리에서 밀려나 사적이고 개인적인영역으로 범주화 되고, 정치, 제후,민족등이 더 상위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으며 신앙은 종교개혁이전보다 더 정교하게 내면의 규율을 강제하는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많은 사가들이 종교개혁을 근대를 열어준 , 역사의 진보를 가져온것으로 평가를 하였지만 , 새로운 연구는 그것의 깊은 그림자를 보여준다. 예기치 못했던 모습들이 다수 관찰 되었기 때문이다. 전 유럽에서 고백화 과정을 거치면서 종교개혁은 새로운 종교적 억압과 사회적 긴장을 낳고 자유보다는 새로운 규율 체제를 만들었다. 미셀푸코는 중세의 교황 중심 권위가 약화된 자리에 더 세밀하고 일상적인 규율 권력이 확산되었다고 하였다.그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의 본질을 "규율 권력"의 발전에서 찾는다. 종교개혁은 신앙의 자유보다 오히려 신앙에 대한 감시와 자기통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그 시기에 나타난 마녀사냥은 이러한 규율 체제의 극단적 형태였다.(pp927)

결론적으로 종교개혁을 합리성과 탈주술성의 근대와 직접 연동시키려는 목적론적 패러다임은 해체되고 있다. 유럽인들이 자명한 공리처럼 동일시하던 합리성과 진보로서의 근대와 근대성이 20세기에 처절하게 붕괴되었기때문이다.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종교개혁가들이 아니라 근대를 피로 물들였던 유럽인들 자신에게 돌려져야 마땅하지만, 그런 그들의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투사한 종교개혁과 종교개혁가들의 이상도 마찬가지로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유럽이 자부심으로 여겼던 그 근대는 이상적이거나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지 못한 채 온 인류를 충격속으로 몰아넣으며 마감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역사가 선배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중세의 혼란기 내지는 암흑기에서 조차도 그리스도교 복음은 문제가 없고 다만 그것을 담은 인간의 어두운 면이 부각되었을 뿐이다."라는 류의 말인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도 한마디 거든다면  중세의 역사는 인간의 좌충우돌 방황과 광기의 역사(미셀 푸코의 동명 저술이 있음)를 보는 것만 같다. 인간은 로마서 7장을 기초로 본다면 선,악한 존재이지만 끝내 어둠에 굴복하는 존재인데 , 오래된 신앙유산이 있는 유럽에서 조차 그 어둠을 모두 걷어내지는 못하였다. 지금도 여전히 분별이라는 이름으로 배제와 차별이 지속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말처럼 근본 종교를, 신앙을 떠나지 못하는 방랑자, 아주 고약한 떠돌이 , 황야의 이리 같은 존재가 아닐까?

다시 처음의 똘레랑스로 돌아가서 종교개혁기와 종교전쟁시기에 뿌려진 똘레랑스는 프랑스에서 다시한번 피의 혁명의 소용돌이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지만 다른 저서에서 비교적 상세히 다룬다.(거꾸로 읽는 교회사, 수도회 , 길을 묻다)필요하다면 프랑스 혁명사 정도 읽으면 도움이 되겠다.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140년 뒤 부터  나폴레옹시기를 거쳐 지나 오랜 시간 동안  프랑스에서는 종교개혁기와는 다른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예전에 읽은 프랑스 혁명사를 보고 그 살풍경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이처럼 처절히 싸우고 혼란과 개혁으로 나라를 몰아넣은 프랑스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근저에 흐르는 것은 패션과 예술 , 낭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런 혁명을 거치고 수습한 토대위에 나온 꽃이요 열매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느낌이었다. 똘레랑스도 그런 오랜 과정을 거쳐 프랑스에서 맺혀진  열매중 하나이리라. 프랑스 국기는 파랑, 흰색, 빨강 삼색기 인데  자유 ,평등,박애를 상징한다.(아래 사진 참조) 어찌보면 그것은 똘레랑스에 조금씩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이다. 국가도 영국이나 일본의 입헌군주를 찬양하는 노래와는 다르게 혁명기의 느낌이 나는  가사이다.(우리나라 국기의 흰색은 평등이 아니라 평화를 상징, 애국가는 얼마나 자연과 친화적이고 온화한 노래이던가?)

홍세화  선생이  이런 역사적인 긴 과정을 거쳐 민족과 문화속에 자리잡은 똘레랑스의 세례를 받고 , 고국에 왔을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다는 몰라도 미루어 짐작이 된다. 산업화와 민주화와 사회적 갈등극복을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속도와 시간으로 겪어왔고 겪어 나가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똘레랑스가 언제쯤 공기처럼 자연드러운 공공재가 될 수가 있을지?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잔재인 휴전선이 있고 , 좌우 갈등, 그외 산적한 갈등들이 산재하고 있지 않은가?(그런 와중에도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가 종교전쟁이 나지 않는 것은 유럽인들이 보기에 매우 신기한 현상일 듯 하다. 우리는 자연스러운데.)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종교가 정치와 민족이라는 것의 하부에 위치하게 된 것을 보면 이해가 되기는 한다.

바라기는 강제된 똘레랑스, 혹은 위험을 회피한 상호합의라는 것이 이제는 우리사회에도 무게감을 가지는 단어가 되었으면 한다. 다른 듯 비슷한 우리내 정서가 담긴 권정생 선생의 말도.(아래 사진 참조)더 나아가 시인의 상상력을(다소 나이브하고 현실감이 적을지도...) 발휘해 본다면 남북한 평화지대의 지경을 넓혀가고,  두만강가에 대륙세력인 중,러와 해양세력인 미,일 그리고 중간지대인 남북한 (넓게 보면 대만도)이 만드는 똘레랑스 필드가 만들어지는 , 도마 안중근이 품었던 동양평화론(나는 이것이 디히트리히 본회퍼보다 앞선 상상력이라고 보임)이 구조화되고 현실화되어  "평화공존장터"가 서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이것에 대해서는 더 가다듬어 언젠가 포스팅하게 될 것 입니다.)

덧: 정리를 하다 보니 이전 저작들과 연계되는 것이 여럿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간단히 제 중심의 가이드를 한다면 이렇습니다.  이는 전작 읽기를 전제로 합니다. (저는 이전 저작들은 깊이는 아니어도 다 읽었습니다.)
종교개혁 , 중세에서 근대로의 역사적 대전환 을 기본 텍스트로 하고, 그 앞 역사는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로 보완하고, 중세 역사는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로 보강합니다. 그리고 세부 역사로 들어가서 공의회 역사를 읽습니다.
이 4책을 기본 텍스트로 하고  거꾸로 읽는 교회사로 조금 톤다운 한다음,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 수도회 길을 묻다, 신데카메론를 읽으며 현실속에서 역사 읽기를 추가 합니다. 그러면서 저자가 밀어붙인 사유의 지경까지 같이 밀어붙여 봅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으로 전체적인  정리를 하고
역사학자의 성경읽기(한 인문주의자의 )인 ,교회 , 경계를 걷는 공동체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세미하지만 무엇인가 헛헛하지 않은 묵직한 것을 건져올리게 될 것 같다는게 제 짧은 생각입니다.
긴 글 읽어 주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이제 결론부를 정리 했으니 본론부를 해야 하는데  언제 할지 모르겠네요.^^
파리 사진은 출장 다녀온 딸아이가 보내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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