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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중세에서 근대로의 역사적 대전환』(도서출판 길, 2026)  최종원 교수님 자천서  입니다.

그간 몇 차례 소개해 드린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기획부터 집필, 편집을 거쳐 책이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습니다. 백팔번뇌를 한 10배쯤 하니 1,008쪽의 벽돌책이 되었습니다.

관점 뒤집기
대체로 종교개혁은 가톨릭 교회의 타락에 대한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의 저항이라고 읽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을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이라는 관점으로 읽기 보다는, ‘16세기 종교’ 문제라는 유럽사의 사건으로 총체적으로 조망합니다. 오히려 개혁과 갱신, 정화라는 이름으로 16세기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종교적 배제와 불관용의 관점에 주목합니다. 여러모로 기존의 익숙한 관점에 대한 뒤집기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익숙한 통념과 선입관을 무너뜨릴 책입니다.

빨간 책
종교개혁사에 대한 유사한 또 한 권의 책은 아닌, 책 표지색 만큼이나 강렬한 진짜 ‘빨간 책’일지도 모릅니다. '타락'에 대한 '개혁'의 구도가 아니라, 16세기 ‘근대의 종교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추적합니다. 제가 쓴 이전의 교회사 책을 읽은 분들은 신학교에서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 많다고들 합니다. 이 책은 그 결정판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교파적 종교해석만 배운 목회자, 종교개혁을 사상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조직신학자, 그리고 가톨릭 신학자와 성직자들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럽 중세와 근세사 연구자들과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 대중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해석사
이 책은 제가 익숙하게 내오던 기독교 출판사가 아니라, 학술전문 출판사의 길을 올곧게 걷고 있는 ‘도서출판 길’에서 냈습니다. 보편의 언어로 교회사를 읽어보려는 진지한 시도입니다. 대중서도 아니고 기독교 출판사가 아닌 곳에서 나왔기에, 책을 어떻게 광고하고 홍보하여 독자들에게 다가갈지 고민이 됩니다. 다른 책보다 분량과 가격이 있다 보니 절반 정도만 찍었습니다. 학술서적이라 기존의 대중서만큼 관심을 끌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껏 나온 책과는 성격을 달리합니다. 종교개혁사 연구의 최신의 흐름과 성과물을 충실히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꾸준히 읽히고 연구되길
출간 마감시점이 정해져 있는 지원금을 받아 출간하는 터라, 약 5개월에 이르는 편집 기간이 무척 고되었습니다.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도 있게 출판해야 하기에, 시간적 ·심리적 압박을 무척 심하게 받았습니다. 심지어 칸쿤 여행 가서 리조트 바깥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하루 10시간씩 원고와 씨름하다, 몸살이 걸려 몇 주간 호되게 고생했습니다. 책이 나오니, 그래도 아주 무익한 고생은 아니었다는 자부심이 듭니다. 저간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꽤 오랫동안 이 책 이후 단독 저술이 나오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당장 많이, 빨리 팔리는 책보다 꾸준히 읽히고 연구되는 책이면 좋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존의 종교개혁사 서술과 차별점(저자 안내글 2편)
  
『종교개혁, 중세에서 근대로의 역사적 대전환』 저자 머리말에서:

나는 유럽 중세사가이다. 전공한 시대는 종교개혁 한 세기 전인 15세기이다. 15세기는 유럽사에서 16세기의 부록 또는 종교개혁을 위해 어둠으로 남겨져야 했던 잊힌 시기라는 편견에 시달렸다. E. F. 제이컵(E. F. Jacob, 1894~1971)은 이 15세기를 독자적인 성취를 거둔 시기로 바라보았다.

15세기는 중세와 근대의 연속성을 증명하기 위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잇는 든든한 다리 역할을 한 세기로 재평가되고 있다. 15세기에 대한 해석이 바뀐다면 16세기의 종교 지형도 역시 바뀌게 된다. 중세사가로서 나에게는 중세와의 연속성 속에서 종교개혁기를 유럽사 전반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종교개혁을 중세와의 단절이라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중세와의 연속성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공부의 결과물이다.

종교개혁사를 차별성보다는 공통성을 주제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지중해 세계와 서유럽 세계의 종교 환경은 교파에 따라 독점적이거나 배타적이기보다는 공유하는 가치가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은 종교개혁을 프로테스탄트의 전유물로 여기기보다 느슨한 규정 아래,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개혁과 쇄신의 움직임을 포괄하고자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개혁 서사는 교회의 부패와 부조리에 대한 쇄신, 개혁, 정화이다. 그간의 프로테스탄트 프로파간다는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개혁가들의 운동으로 본다. 자연스레 프로테스탄트가 주도하고 가톨릭이 반응하는 형태로 구도가 짜였다. 그런데 종교개혁의 예기치 않은 혹은 인식하지 못한 부산물은 특정한 종교적 신념의 생성과 강조로 인한 불관용의 제도화이다. 16세기는 그간 유럽 내에서 공존해 오던 타 종교를 배타적으로 차별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고, 체제 내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해외로 추방하거나 마녀사냥으로 박해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시기, 모든 지역의 종교개혁 운동에 관용의 문제가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했다. 그래서 이 책은 정화와 불관용, 사회 규율과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관점으로 종교개혁을 읽어나간다.

이 책이 지니는 또 하나의 차별성은 종파적 시각에서 한걸음 떨어져 서술했다는 데 있다. 저명한 영국의 종교개혁사가 디아메이드 맥클로흐(Diarmaid MacCulloch, 1951~ )는 종교개혁사 서술에서 종파적 선입관과 편견이 없는 서술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전반적으로 고백적 신념이 없는 역사가가 침묵의 소리를 듣는 데 더 유리하다. 종교개혁을 기록한 데에는 의미심장한 침묵이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침묵은 신중한 신념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대체로 그럴 수밖에 없는 두려움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 덧붙여 보고자 한다. 유럽적 편견이 없는 역사가는 더 편견 없이 유럽 교회사를 쓸 수 있다. 유럽 중심 사관의 극복이라는 거창한 명제를 달지 않더라도 한국인의 시각에서 서구의 종교사를 기술하는 자체가 외부자의 독특한 시선이 담길 여지가 많다. 종교개혁의 정당성과 유럽의 근대를 연결하는 시도는 유럽의, 유럽에 의한, 유럽을 위한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 그 관점에 내재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 틈새를 얼마나 성실하고 설득력 있게 파고들었는지는 모르나, 이 관점을 끝까지 견지하며 서술을 이어가고자 했다.

이 책은 종교개혁을 사상사보다는 사회문화사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프로테스탄트 진영에 국한되지 않는다. 종교개혁은 16세기 유럽의 주요 국가와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종교적 격변 전체를 포괄하는 역사적 개념이다. 여기서 주된 구분점은 ‘프로테스탄트냐, 가톨릭이냐’가 아니다. 오히려 개혁가들이 주도해 아래로부터 이루어진 상향식 개혁이었는가 아니면 국왕이나 교황, 주교 등 기성 권력이 주도해 교회의 구조와 형식을 바꾼 하향식 개혁이었는가에 있다.

책 구성에서 보이듯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프랑스와 스페인 종교개혁, 그리고 가톨릭 종교개혁과 함께 하향식 개혁으로 분류했다. 이러한 분류는 기존의 연구서가 종파적 구분에 따라 종교개혁을 해석해 온 관행과 다르기 때문에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 더불어 주요한 종교개혁 운동에 대한 연구사 또는 해석사를 덧붙여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이 어떻게 수용되고 재해석되어 왔는지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16세기 종교 문제를 좀 더 세밀하게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16세기 종교 격변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사를 소개하지만, 이 책에는 일관된 나의 시각이 배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인 설명이 아니라 나의 독창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서술되었다. 역사학은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고 해서 이전의 해석을 완전히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새로운 해석과 관점은 곧 또 다른 누군가의 매섭고 날카로운 비평 대상이 되고, 이러한 비평과 응답의 순환 속에서 역사 이해는 더욱 깊어지고 발전한다. 역사를 쓴다는 것은 각자 위치한 자리에서 자기만의 경험과 해석 방식을 씨줄과 날줄 삼아 작은 조각 하나를 직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직조된 조각을 모으다 보면 조금은 더 명료하게 과거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믿음을 안고서 말이다.

p.s:제가 애정하는 최종원 선생 글입니다.
저도 읽고 있는데, 천천히 음미, 소화해서  정리글  올려보겠습니다.
아마도 최선생의 공저인 "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과 "교회, 경계를 걷는 공동체"가
현실적 결론이 아닐까 싶네요. 이 책들  교차 읽기를 추천드려요.~^^
아래링크는 한국일보 인터뷰글

https://v.daum.net/v/20260402043232321?fbclid=IwVERDUAQ6s6hleHRuA2FlbQIxMABzcnRjBmFwcF9pZAwzNTA2ODU1MzE3MjgAAR7fkN2HkJCgQETHXzbaF0ubMEuUWP_VKA8VbGwwN6WQYgYQ7T1diJsqQbojug_aem_1WQlM5n_AU_TcQx-8pMfAA




아래 링크는 한겨레 기고문(표정훈 출판평론가)
https://v.daum.net/v/20260220050705869

정결과 순수의 이름으로 탄압하고 배제한 ‘종교개혁’ [.txt]

‘종교개혁, 중세에서 근대로의 역사적 대전환’은 특정한 종교적 신념의 생성과 강조로 인한 불관용의 제도화, 사회 규율과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관점으로 유럽의 종교개혁을 해석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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