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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2,15 주일 설교문           사람의 향기(부제 : 생명의 향기)
말씀:고후 2장 14-16 ...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오늘 설교가 제가 회복된 후 네번째인데 , 저는 설교할때마다 여름수양회때 한 설교를 꼭 듣고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설교할 수 있는 은혜를 잊지 않고 감격속에서 하게 되기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작년 여름수양회때 어려움 속에서 두려움을 이기는 것에 대해 한 몫 잡았다고 했는데 지난 세 번의 설교도 그렇고 오늘 설교도 잘 들어보시면 두려움을 이기는 것과 연계가 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냄새에 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두려움을 이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시고 들으시면 연결이 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향기"에 대한 것입니다. 향기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오늘은 "인향" 곧 "사람의 향기"에 대한 것입니다. 지난번 설교에서 시 처럼 아주 간단히 설교하겠다고 하고서는 길게 하였다고 아내에게 한 소리 들었습니다. 오늘은 정말 시 처럼 간단히 하려고 합니다. 이는 여러분과  매일 묵상글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 할 것 같습니다.  서론격으로 시를 하나 읽고 마지막에 결론격으로 하나 읽을텐데 이것만 음미해도 오늘 설교는 다 들으신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흘려 들으시면 섭섭하니 시를 기반으로 들으시면 더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읽겠습니다.

         사람의 향기             소엽   이학상

화향과 인향이 날리던 곳
가자 ,돈바스
고약한 포연과 죽음의 썩은내가 삼키고
다시는 사람내음 나올 수 없다는 듯
아우슈비츠의 신음어린 절규 포개지고

그 분은 어디 계시는가
코가 있다면
이 냄새 콧구멍 찌르지 않겠는가

침묵속
십자목 나무 하나 덩그러니
찢긴몸 그곳에 잇대어 있고

다시
또 다시
사람의 향기 진한 핏물되어 흐른다
언제고 그 곳에
화향보다 진한
인향 날리리

(앨리 위젤의 절규와 쥬르겐 몰트만의 십자가 신학을 모티브로 짓다.)
이 시의 모티브는 유대인인  앨리위젤이 15세때 유대인 수용소에서 어린 소년이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침묵하시는 듯한 하나님을 향해 죽으신 하나님이라고 절규하는 글과 이것에 대해 십자가를 통해 고통에 침묵하지 않고 참여하고 계시다는 쥬르겐 몰트만의 글을 주제로 연결해서 지었습니다.
위젤은 인향이 없어진 것과 동시에 하나님의 향기마져 사라졌다고 절규합니다. 그 배경에는 인종주의 , 조직적인 폭력, 많은 사람들의 무분별한 동참과 조력, 인간의 잔인성등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트만은  그런 인간을 위해 죽으신 십자가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향기가 나오고 있고 인간에게서 향기가 나올 수 있다고  희망어린 말을 하는 듯이 보입니다.

네, 오늘 설교는 귀로 듣기는 하지만  코로 맡는 설교인 듯 합니다. 지난번 나누었듯이 "화향백리" " 주향천리"  "인향만리" 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난향백리" "묵향천리" "덕향만리"라는 말도 전해지는데 ,비슷한 의미인데 출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주향천리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지만 , 느낌이 팍 않오시겠지만 ,일단 오늘 설교에서는 마시는 관점 보다는 향기의 관점으로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인향만리라 하니까  예전에 학생때 "만리향"이라고 이름 붙은 중국집에 갔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또 성서에서 따왔겠지만 제가 아는 목회자분은 교회 이름을  "향기교회"(Aroma  Church )로 명명하시기도 하였습니다.

또 샤넬 향수를 비롯하여 자동차 안, 집, 화장실 안 , 사무실 등등을 향내나게 하는 향기 산업이 갈 수록 번성하고 있고 향기 테라피스트들도 나오게 되었습니다.(딸이 알려줌)딱히  향기라고 말은 하지 않지만 맹자를 비롯한 유가의 역사 인물들도 덕향을 그리워하고 덕향이 있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지금의 힘의 논리가 가속화되는 살풍경의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더더욱 덕향이 베어든  치세를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향기"와 연관된  구절들이 여기 저기에 산재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몇개의 카테고리로 정리해보면 제사에 관계된 것(창8:21,레위기1-7장,요12:3, 이사야1:13, 출29:18..), 기도에 연결된 것(시141:2,계1:8..) 성품에 관련된 것(전7:1,아가1:3,고후 2:15-16, 빌4:18, 전도서10:1,...) 향이나는 귀한 재료로 표현된 것(잠27:9, 엡5:2,마2:11...)  등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향기로운 향과 대비하여 고약한 , 부패한 냄새등으로 표현되는 악취에 대해서도 다수 언급되고 있습니다. 딱히 향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향으로 읽을 수 있는 것들까지 포함하면 매우 많은 수의 구절과 표현이 산재합니다.
오늘 설교를 이 향기의 관점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와 가장 고약했던 냄새를 떠올리면서 들으시면 색다르게 들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오늘 설교의 핵심 내용은 바울이 믿는 신자들을 " 하나님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정체성을 지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정하게 된 것은 우선 얼마전 40억 지분을 주장하여 똥냄새 나는 돈냄새를 풍긴 강남의 원로 목회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점점더 냄새의 카테고리가 확대되었습니다. 제사로 유비되는 신앙인의  신앙 냄새,   러,우 전쟁, 이, 팔 분쟁속 죽음과 포연의 독한냄새,  그리고 이차대전때의 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를 겪은 생존자들의 피와 땀과 재가 섞인 냄새 등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유대인 파울첼란 시인의 시에 잘 나와 있고  그의 시중  죽음의 푸가 중 새벽의 검은 우유에 그 고통이 잘 나와있음)그러다  오늘의 말씀인 "하나님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는 말씀이 떠올라  이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우리들이 향기 자체는 아니고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에게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오는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향기를 풍기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저 위에 모든 생명의 향기의 근원인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아래에 그 향기를 발산하는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아래에 그 향을 머금은 신자들이 있고 그 주위에 그 향을 맡는 많은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 본문을 바울이 살았던 시기의 로마문화속에서 읽어내면 이렇습니다. 본문은 로마장군이 승리의 개선식에서 향을 피워 신들에게 분향을 드릴때, 그 향냄새가 포로들에게는 죽음의 냄새이고  승리한 장군과 군인들 시민들에게는  승리와  생명의 냄새가 되는 모습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죄와 죽음에 대해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지나갈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태초의 인간의 코에 생기가 들어가는 장면이 연상되듯이 생명에 이르게 하기도 하고 , 반대로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을 통해 생명의 냄새를 맡은 자들은 생명으로 나아오고 생명을 얻게 되고  , 그것을 거부하고 어둠을 사랑하는 자들은 계속 죄와  어두움속에 거하다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이런 역활을 하게끔  부름받았고,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냄새에서  생명이라는 헬라어는 조에(zoe) 로서 비오스로 대비되는 생물학적 생명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의 차원이 완전히 바뀐 영적인 생명, 참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나오는 신비한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히브리어로는 하임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오는 생명이고 그 상태를 조에라고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순간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향기, 생명의 냄새를 내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생명을 가로질러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냄새, 향기를 내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습니까?향기로운 종교행위, 도덕적인 행동 얼마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로  존재자체가 그렇게 되어갈때 그런 역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존재자체가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참인간이신  그리스도안에서 ,성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와 연합함 속에서 성삼위 하나님안의 참생명을 누리고  참인간이신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그 냄새가, 체취가  우리의 내면에 스며들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게 앞에 나온대로 화향백리만큼 이를 수도 있고 묵향천리 만큰 이를 수도 있고 인향만리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지난주 읽은 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에서  pp279) 강교수님은 한마디로 이를 응축해서 말씀 하셨습니다.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성령안에서 아버지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신비적 삶"이 없이는 "선교적 삶"을 살아 낼 수 없습니다. 심오한 신학과 철학과 오랜 사유가 응축된 이 말씀이 단박에 잘 이해 되지는 않지요?

여기에는 로마서 3장의 그리스도안의 구속의 은혜에 연결해서 나오는 롬6장의 그리스도와 연합한 죽음과 부활, 롬 8장의 성령안의 삶, 요한복음 15,17장의 예수님, 하나님과의 상호내주와 사귐등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즘 매일 묵상글에서 계속 반복해서 나누는 내용입니다.

조금 어렵고  부담이 되지요? 하지만 이런 영적현실을 믿고 살다보면  어떤이는 백리는 못되어도 일리, 그것도 않되면 영점오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이는 그것을 뛰어넘어 수백리, 수천리, 수만리도 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매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십시요. 지난번 설교때부터 계속 반복합니다만 그리스도의 향기안으로 들어가 성삼위 하나님과  호흡하고 생명의 향, 참 인간의  향을 느끼고 즐거워하고 생명을 누리다보면 자연스레 하나님의 생명의 향기가 묻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중력만큼이나 매우 자연드러운 현상입니다.  이와 반대로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하려고 해볼 수는 있으나 그것은  결국에는 머리통이 깨지는 듯한 고통과 악취만 남기고 끝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신선하고 무한정하고 어디서든 접촉할 수 있을 정도로, 영겁리로 퍼져 나오는 그 향기를 느끼고 맡고 그 안에 깊이 깊이 거하고자 소원하고 거하는 가 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주향영겁리? ,무한정입니다. 못 이를 곳이 없고 중간에  소진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그 향기를 못맡고 , 우리의 마음이 그리 간절하게 그 안에서 호흡하고 지내려하지 않기때문에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방해하고 어렵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속사람,옛 사람, 옛 자아라고도 하는 것 입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속사람 본성입니다. 그것이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욕망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형태로 우리를 강력하게 끌어 당깁니다. 창세기 3장을 기초로 보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욕망입니다.  요한 일서를 기초로 보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요한일서 2:16) 핸드폰을 통해 전달되는 수 많은 동영상과 사진들, 소식들은 이런 욕망들을 자극하고 부추깁니다. 상대적 박탈감과 욕구의 좌절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나는 뭐했고 뭐하고 있었는가?"" 나도 저렇게 즐겨볼까" 하는 등등의 느낌 말입니다. 숫자와 사진으로 압도해오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투우소 같은 것의 돌진을 막아 세우기에는 힘이 한참 모자릅니다.

이것에 더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환경이 급격하게 동물적 본능을 강제합니다.
신자유주의 논리는 승자독식, 2등은 기억하지 않는 세상, 극심한 양극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신제국주의의 신호탄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러,우, 이, 팔, 곳곳의 내전과 전쟁등에서 국제규범의 종말, 즉 가치의 힘에서 힘의 가치로 급격히 전환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의 다보스 연설참조). 몇일전 새 독일 총리인 메르츠는 러, 우 전쟁이 유럽을 "세계사라는 휴가"에서 돌아오게 만들었다고 했고 , 프랑스와 함께 핵전력에 대해 의논을 개시한다고 선언을 하였습니다. 이제 세상은  점점 인간의 얼굴을 한 논리와 가치는 사라지고 약육강식의 동물적 본능만이 노멀한 세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들어나고 있는 앱스타인 파일이 있는데 , 유대인인 제프리 앱스틴과 영국인 길레인 맥스웰이 거의 20여년에 걸쳐 1000여명의 미성년 소녀들을 유인 조종 성착취, 불법정보조작,  상류층들의 조직적인 참여와 개입등의 범죄가 담긴 파일입니다. 600만건중 350만건 정도 공개했을 정도인데,세상의 권력과 재력, 학력의 정점에 있는 자들, 이름만 대면 모르는 이 없는 자들이 벌인 추악한 미성년 성착취와   불의한 거래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미국과  유럽, 온 세상을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네플릭스 4편과 유투브방송, 웹문서등을 보다가 너무나 역겨워서 토할 뻔 하였습니다. 그 파일이 다 공개되면 세상에 악취가 진동할 것 같습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정계, 경제계, 학계등 최고 정점에 있는 자들이 다 걸쳐 있는 것 같습니다. 요8장 44절에 마귀의 특징이 거짓과 살인인데  이들은  마귀처럼 완전히 흑화된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이차 세계대전중 유대인 수용소에서 보여진 인간의 악함과 독함과 끝모를 흑화된 모습과는   또 다른 인간의  절대흑화된 모습을  아이러니컬 하게도 유대인과 난사람들이라고 하는 인간들에게서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는데(렘17:9) 그 부패의 냄새가 진동하는 끝모를 심연의 깊이에 절망감이 듭니다.우리나라의 n번방 조주빈이나 캄보디아 천즈는 정말 새발의 피도 않되는 정도 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무슨 향기가 나오겠습니까? 한 개인이 , 자그만한 공동체가 무슨 힘으로 이 탁하고 숨막히는 악취와 독한 가스같은 냄새를 견뎌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상황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이땅에서의 성공을 부추기는 "삐뚤어진 번영신학"류의 얄팍한   말들이  많이 전달되고 있다는게 뼈아픈 현실입니다.구원을 십원만도 못한 싸구려로 만들어 버리고, 성경적제자도는(이것도 교회프로그램적 제자도로 변형된지 오래됨) 기이한 사람만 추구하는 것이 되어 버린지 오래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솔직한 말로  저나 여러분이나 그것을 추구할 마음의 소원도 능력도, 부끄럽지만 별로 없는 상태로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리기가 얼마나 쉬운 환경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사람의 향기가 점점 없어지고  본능의 독한 악취만이 진동하는 살풍경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마저  별스런 정화의 역활을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자주 목도하고 있습니다. 너무 자주 지저분한 냄새나는 말과 사례들이 툭 툭 튀어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도 또하나의 세상 커뮤니티같은  모습과 현상을 여기 저기서 보게 됩니다.

로마서 1장 후반부와 맨 마지막 절을 보면 여러가지 악취나는 죄의 최후 단계는 가치관의 전도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32) 이런 가치관의 전도 현상이 노말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말 무슨 끝물에 이르러 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렵지만 , 옛사람의 본성과 이를 부추기는 외부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눈을 돌려 ,마음을 돌려  향기되신 그리스도안으로 들어갈때 , 그분과의 교제속으로 들어갈때, 더 나아가 성삼위 하나님과의 페리코레스적인 교제안으로 들어갈때  꽃향같은 향을 품은, 사람의 향기를 내는 그리스도의 향기처럼 살 수가 있습니다. 생명의 냄새를 내며 생명이 살아나게 되는데 쓰임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돈냄새도  잘 맡지만, 생명의 냄새는 더 잘 맡습니다. 생명의 향기 , 생명의 냄새, 참 인간의 냄새가 나면 그곳으로 , 그 사람에게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그리스도의 향기나는 사람, 생명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너무나 간절한 시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모두 차가워지고 본능에 충실해 지려는  마음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따뜻하게 매일 매일 데워지게 하여 봅시다. 더 나아가 주향영겁리, 온전한 사람의 향기, 생명의 향기 가득한 그리스도안으로 조금씩 조끔씩, 한 발짝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이럴때 무슨일이 나와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지 기대하며 나아가 봅시다. 이 땅의 , 더 나아가 세상의 믿는 자들의 작은 생명의 향기들이 모여  죽음의 가스냄새가 진동하는 세상을 중화시키고 탈취시키는 날이 오도록 두 손 모으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제 이야기 잠간 하겠습니다. 계속 반복하지만 이는 제 자랑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해  후반부터 어느정도 심신이 회복되고 나니 ,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때마다 지난 날 제가 들어낸 허물들과 악취나는 모습들이 하나 둘 떠오르고 마음이 많이 괴로웠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악취나는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 근저를 가만히 응시하고 들여다 보면 그 밑에는 두려움이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려워서  예민하게 과민 반응하고, 두려워서 차갑게 대하고, 두려워서 칼처럼 자르고 찌르는 말을 하고,두려워서 많이 불안해 하면서 뒤로 퇴행하고 등등.
제가 폐북에서 오래전 학부때 성경으로 도왔던 후배와 거의 20년여만에 폐친을 맺었는데, 처음에는 지난날의 저의 모습으로 인해 많이 미안하고 데면 데면 했습니다. 요즘에 와서 그 후배가 제 글에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를 어느정도는 받아들여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제가 지난 2년간의 무력하고 힘든 시간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성삼위 하나님과의 연합과 사귐의 은혜속으로 조금씩 깊이 들어가고, 그때 얼마든지 새롭게 되고 악취를 벗어나 향기나는 삶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고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제가 앞으로 상당한 시간동안, 아마도 한 2년간은  이것에 마음을 들이고 힘을 쏟는다면  저의 남은 삶은  그리스도의 향기되어  생명을 살리는 향내나는 삶으로 그럭저럭 마무리 되어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신앙은 믿음의 경주로 성경에 많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릴때 70-80%의 사고가 난다고 합니다. 뜰때 3분 , 착륙할때 8분해서 마의 11분 혹은 13분이라는데,극도로 긴장하고 비행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초기도 힘들지만 마지막 마무리 할때도 미끄러지지가 , 삑사리 나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마지막에 잘 마무리 하고 향기나는 모습이 될때 모든 삶은 아름다운 향으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됩니다. 생명을 살리는데 쓰임을 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의 신앙의 여정이  세상이 흑화되어 가더라도 그렇게 되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하나님의 선교" ,최종원 강영안 공저 "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  카먼 조이 아담스의 "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다" 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번에 사도행전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양과 기도한 것을(행16:25) 다루고 그후에 두려움을 이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대해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마음을 담아 (저의 소원을 담아)시 하나 읽고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소원            소엽     이학상

원하는게 하나 생겼어요
인향나는거

이제껏  여러제물담아
향내 피우며 드렸는데
돌아보니 역겨운 냄새
많이 올려졌어요
죄송해요

남은 날들은
고집 아집 트집
두려움 불안
욕심 탐심품어

거칠고 딱딱해진 겉사람 부서져
고운 가루되고 당신의 향내 스며들어
향기나는
소제처럼 드려지기를

그 향기 머금은 인향 풍겨났으면
생명의 냄새되어
생명이 살아났으면

쓰다보니
소박한 소원 커졌네요
그래도
꼭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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