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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하나님 잘 믿읍시다. 잠언 1:7

美親세상 2025. 10. 5. 13:50


          2025,10,5            하나님 , 잘 믿읍시다.

우선 , 1년 10개월만에 교회 설교단에 서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여름수양회때도 말씀 드렸듯이 다시는 설교단에 서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었는데 ,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금 회복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 감개무량 합니다. 지난 여름수양회 이후에 저는 두 사람 몫의 일을 하면서 제법 바쁘고 때로 지치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회복이 가속화 되어 가다보니 글도 제법 쓰게 되고 블로그에 다시 모아가게 되었습니다. 아직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에는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어느때에 잘 정리되어서 시집으로 발간해 여러분들에게 한 권씩 드리는 날이 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수양회말씀에 이은 2탄격의 말씀입니다. 제가 그때 어려움속에서 무언가 한몫 잡은 것 같다고 했는데 , 두려움을 이기는 것에 대한 것이 그것입니다. 수양회때 간증설교로 전해 드렸듯이 예수그리스도안의 은혜속에서 강해질 수 있고 , 그때 감당키 버거운 두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좀더 근본적으로 두려움에 빠져드는 이유와  어떻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잠언에 기록된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 입니다. 이는 공포심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사랑과 존경과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표현은 잠언에 20여회 나옵니다. 처음과 끝도 중간부도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씀을 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성경서술 기법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이 얼마나 은총을 받는지 기록하고 끝맺음을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과 다윗의 예를 보아서인지 , 남편들, 남성들은 미덥지가 못했을 수도 있고  르우엘왕의  어머니가  작성해서인지  여인이  하나님을 경외하면 가정과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는 소망을 주기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이걸 어떤 목사님이 포인트를 두고 설교까지 하신것도 보았습니다.  

하여튼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은 신명기적인 신앙관을 아주 독특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신명기적 신앙관은 구약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고 기록되는데 , 대략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지키고 살라는 것입니다.  잠언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데 , 다만 표현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지혜를 따르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두려움을 비롯하여 인생의 많은 문제들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저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여정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제 자랑과 주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관통한 말씀을 전해 드리는 것이 도움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그전에 제가 잠언을 읽어온 내력을 말하는 것이 순서인 듯 합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매우 가까이 하고 읽은 말씀이 잠언입니다. 신앙도 어렸거니와 잠언은 그야말로 일반 지혜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일반론에 근거해도 설득력이 있는 말씀들이었기때문입니다. 솔직히 다른 성경은 좀 어려웠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습니다. 지금은  다양하게  좋아하고  최애는  시편  입니다.

젊을때 게으름에 대해 고민을 한적이 있었는데, 잠언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참 많이 나와있었습니다. 인상깊게 읽은 것은 개미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개미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여름에 열심히 일을 하는데 이유가 겨울이 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때문입니다. 결국에 장래를 , 더 나아가 비전을 생각지 않으면 하루살이처럼 바쁘게 살아도 초점을 잃고  게으름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연관해서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는 (잠 29:18)말씀도 많이 마음에 남은  말씀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일을 미루는 버릇,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대한 과도한 걱정도 게으름의 주요한 원인중의 하나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들어온 말씀이 교만과 겸손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역사학자 토인비 선생의 역사의 연구를 써머리 판으로 읽었었는데, 거기에도 문명의 쇠퇴와 망하는 씨앗은 교만(좀더 정확히는 한것  성취에 도취된 상태)과 비슷한 상태에 기인한다고 나와 있어서 실감있게 다가왔습니다. 교만으로 여러 내외적인 도전적 상황에 창조적 소수자가 되어 창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이전의 성취에 취해 정신못차리고 지배적 소수자가 되어 대응하다 점점 쇠락해 가게 된다는 내용이 잠언 말씀에 오버랩되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 뉴스에서 자주 보는 어떤 나라의 모습같기도 합니다.

반면에 겸손은 여러모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잠언 곳곳에 기록되어 있어서 그 깊은 의미는 잘 몰랐지만 나름 마음에 새겨 듣고 기록하곤 하였습니다. 일반 속담에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익은 곡식일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도 있어서 더 잘다가왔습니다. 그때는 솔로몬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지 못하면서 잠언의 저자인 가칭 지혜의 왕이라고 하는 그의 말을 잘 듣고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강했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잠언을 가까이 했던 것은 그때당시로서는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잠언 가르침의 본령인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에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여러가지 신앙경험이 더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씀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생때 대학선교공동체에서 여러 훈련, 특히 말씀전하는 훈련을 받으며 ,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대해 많이 혼나고 깨지면서 "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말씀 전하는  모임이 정해지면 정말 몇 주간은 혹독한 훈련이 주어졌는데, 일부 부정적인 것도 있지만 젊었을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랬던 선교공동체가 내부의 허물과  문제로 인해 분란을 겪고 분리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엄위하심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다소 편향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3장 25절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에 나타난 것은 사랑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 저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깊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실뿐만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온 몸에 새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다 참다 공의의 잣대를 조금만 들이대도 정말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와 연계해서 시편 51편을 참 많이 읽고 한동안 많이 회개하였고 제 신앙이 조금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을 하였습니다.

개인이건 공동체건 나라건 제국이건 참주권자 하나님께서  참다 참다가 공의의 잣대를 들이대시면 살아서  그리스도의 심판대앞에 벌거벗은듯이 다 들어나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듯이 공의의 판단을 받게 됩니다.(고후 5:10)
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공동체를 시작하고서 몇년이 지난때 매우 힘든 상황을 맞이하고 있을때였습니다.  그때 입에서 불평과 원망과 독한 말들이 많이 나왔었었습니다. 그러다 근처 동안교회에서 있었던 개인경건 강의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때 주제와는 별 상관 없는  이사야 6장 말씀에서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죽을 듯한 고통을 겪는 장면에서 입술의 죄를 사함받는 장면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은 입술이 거룩해야 한다고 전했는데 그게 제 마음을 깊이 무찔러 들어왔습니다.

그 말씀 듣고 기도하는 시간에 눈물 콧물 쏟으며 회개하는데 갑자기 혀가 꼬이면서 이상한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방언이었습니다. 저는 방언을 받고자 소원한적도 없고 성령집회에 가도 이른바 장풍안수에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를 닮아서인지 아들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권사님과 딸은 아주 잘 넘어갔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조금더 깊이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방언을 할때마다 입술의 범죄가 떠오르고 이사야가 느끼었던 두려움과  은혜를  간접적으로 느끼곤 합니다.또 입술과  말에  관한  잠언과  야고보서의  경계가  잘다가옵니다.

그리고 10년전 총체적으로 작은교회를 시작한 것에 대해서 벽에 부닥쳤을때 세미일터신학 배우러 갔다가 이철규 원장님에게 요한계시록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것이 깊이 남았습니다. 리차드보컴, 이필찬교수님, 이원장님으로 내려오는 계시록 종말론을 배우면서 계시록 4장과 5장이 감명깊게 다가왔고, 계시록 7복 강의를 통해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해야 하는지를 다시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삶을 통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깊은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작은 공동체의 어려움으로 끙끙대는 저에게 온세상을 주관하고 통치하시고 만유를 심판하고 회복하실 하나님을 접하니 마음에 깊은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그때 배운것을 소화해서 교회에서 강의도 하고 설교도 했었습니다.

종말의 소망이 이끄는 신앙의 힘을  깊이 알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일과 영성에 위로조로 삽입된 존 로날드 로엘 톨킨의 "니글의 이파리"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나중에 권사님 강의  재료로 전체내용을 읽게 되었는데 큰 위로가 되는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니글은 그리고 싶은 그림의 나무 이파리 하나 겨우 께작거리다 하나님나라 갔는데 거기서 그가 그리고 싶어했던 나무와 숲과 샘물들이  완성체로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올해 정식으로 출간된 것을 구입해 읽어 보았는데 깊은 감동이 되었습니다.고린도전도 15장 부활장  맨마지막에 나오는 말씀"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줄 앎이라."(고전 15:58)를 새롭게 붙들고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대하는 자세가 조금씩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설교준비하면서 잠언을 몇번 읽었는데 김순영  선생  저서와 함께 읽고 난뒤로 실로 오랫만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지혜쪼가리를 얻으려는 젊은때와 달리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씀으로 포인트를 옮겨서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메시지 서두에 말씀한대로 두려움과 연관지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대조되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잠언 전체를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는 말은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두려운 상황, 재앙적인 상황으로 떨어진다는 언급이 많습니다.

직접적으로 두려움에 대해 언급된 것은 적은데  그중  이게 우리들이 잘아는 말씀입니다."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언 29:25)두려워하는 대상을 사람에서 물질, 권세, 세상, 성공, 실패 ,사역에서의 실패와 성공,  이루어 놓은 성취 등등, 우리가 넣을 수 있는 것을 전부 넣으면 그대로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요즘 국가권력자들을 두려워하여 뇌물을 주고 부당한 명령에 따르다 올무에 걸려든 사람들을  뉴스로 수 없이 접하지 않습니까? 러우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전쟁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상당한 이유가  상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극우 이데올로기에 경도 되는 것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신앙의 세력이 쇠퇴하는 현실에서 오는 정체성이 흔들리는것에 대한 두려움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하나님보다  다른것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려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많이 언급되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스런 태도와 행동들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의 대척점에 있는 말처럼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일단 교만은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교만하면 지혜도 지식도 떠나게 되고 스스로 파멸과 두려운 상황으로 걸어들어가게 됩니다.

이 말씀이 아주 유명합니다."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압잡이니라."(잠16:18) 이게 잠언의 중앙부에 경외하는 신앙과 대비되어 의미심장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모세오경 중앙부 레위기처럼 말입니다. 교만하면 잘되면 잘되는 대로 넘어지고 않되면 않되는 대로 넘어집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않되면 ,어려움에 처하면 사람이 교만하지 않을 줄 아는데, 더욱 완악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열등감과 우월감은 그 뿌리에 교만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교만의 죄의 뿌리는 아주 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아주 존귀한 천사였던 사단이 타락하게 된 것도 자기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교만하게 하나님께 반역을 하였기때문입니다.(겔 28:19, 사14:12, 유다서1:6)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유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교만을 잔뜩 심은  사단의 유혹이었습니다.(창3:5) 마슬로의  욕구  오단계중 최상위가 자아실현인데  실상 더 위에 있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늘 이런 교만으로 흐를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잠언에도  누누히 이 교만의 위험성에  대해 많이 언급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 예닐곱가지를 언급하는데 그 첫째가 바로 교만한 눈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교만을 싫어하시는지 경계합니다.(잠언 6:16) 그 만큼 교만의 죄가 뿌리 깊다는 것입니다.

그 훌륭하던 다윗이 범죄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참왕이신 하나님을 겸손히 경외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교만히 휘둘렀기때문입니다. 그 아들 솔로몬이 왕정후기에 우상숭배자로 전락하게 된 것도  하나님이 주셔서 이룩한 엄청난 제국의 시스템과 부와 권세에 취해서 참왕이요 복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교만하게 떠났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조물주가 아니라 피조물입니다. 그 근본이 티끌로 만들어진 한계가 뚜렸한  존재입니다. 타락한 이후에는 죽음의 형벌속에서  죽기가 무서워 일평생 종노릇하다 재로가는 존재입니다.(히2:15)

70-80 가요중에 천만 조회수를 넘게 기록하는 노래들을 보면 사랑과 이별의 상처에 대한 곡들이 많습니다. 요즘 핫한 케데헌의 오에스티곡 골든이 전대미문의 인기를 기록하는것에는 한인이세 디아스포라들이 겪은 자기정체성의 혼란과 고통이 곡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운동을 위해 구입한 헬스책의 저자는 재벌회장과 사모님들을 도왔던 분입니다.  그분은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선 운동과 음식과 정신적 안정과 스트레스관리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재벌집 사람들은 운동시간도 음식도 관리하기 힘들고 정신적 안정과 스트레스관리는 저희들보다 훨씬 악조건입니다. 그분들도 평안할 것 같지만 스트레스와 불안과 건강염려증으로 두려움가운데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간은 정말 깨지기 쉬은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고후4:7)  그러면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해야 하는데 저 속깊은 곳의 교만이 이를 막습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을 의지합니다.  우상같은 것을 의지합니다. 하다 못해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의지하는 배아교 신도가 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의지하지 못하면 불안한  파스칼이 말한대로 생각하는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교만한 인간의 실존을 깊이 알았던지 잠언 말미  솔로몬의 잠언에 이은 아굴의 잠언에는 유명한 기도가 나옵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을 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8-9)

근본 인간의 교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백을 한 것 입니다.다른 반대각도에서 이런 고백이 신약에도 나옵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겸손히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때 비천한 삶도 풍부한 삶도 다 감당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산상수훈 8복 첫구절에서  천국 백성이 가져야할 첫번째 마음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여기서 가난한 자의 상태는 그저 가난한 상태가 아니라 절대적인 가난,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극도의 빈곤한 상태을 의미합니다.

태초의 교만으로 망가진 것을 회복하는 첫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이요, 천국백성의 마음입니다. 오늘 설교의 중심주제인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도 바로 가난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어떨때 이렇게 될 수가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인간의 인간됨을 깊이 인정하게 될때 그렇게 되어 가게 됩니다. 이 두 방향에서의 앎과 경험이 깊어지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자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아마도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까지 계속 성장해 가야하는 신앙입니다. 교만은  매우 뿌리가 깊기 때문입니다.

최근 총리가 된 김민석 총리도 한때 최연소 국회의원에 대통령 비서실장에 최연소 서울시장후부로 잘나가다가 한순간의 정치적 판단 미스로 굴러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가 20여년만에 다시 회복되면서 모교회에서 신앙간증하며 잠언말씀을 말하였습니다."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이 말씀을 알고 고백하는데 20여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100세가 되었을때, 신앙출발한지 25년후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조금 인정받게 되었습니다.(창21:5,22:12)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조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순종하게 되는데에도 40여년의 혹독한 광야 훈련을 거친 후였습니다.(신8:6)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욥입니다.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라고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욥이(욥1:8,2:8)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시련을 겪고 난뒤에 돌이키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서 진일보하게 되는 것입니다.(욥42:6)

아마도 끝판왕은 메시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지만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십자가에 처절히 달려 죽고 순종하신 예수님 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경외)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여기서 교만은 온전히 극복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은 온전히 들어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했던 믿음의 선배들의 격려와  십자가를 겪으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보이신 예수님께서 이 연단의 긴 과정에 우리를 이끄시고 도우시고 계시니 큰위안과 소망이 됩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의 대상을 제어하고 무엇인가 대처하고 없애려는 방법으로 해결되지가 않습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우리힘으로 제어할 수 없듯이 두려움도 마찬가지 입니다.

피조물된, 실낙원한 , 죄와 사망권세 아래 놓인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들이 얼마나 수도 없이 많습니까? 지난 여름수양회때 은혜를 받았다고 하루 아침에 두려움이 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크고 작은 오만가지 두려움이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기웃거리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저는 나름 완벽주의적인 치밀한 성향의 사람입니다. 무엇이든지 계획되고 정리되고 안정되게 진행되는 것을 선호 합니다. 그런데 타고난 깡과 기는 매우 약한 편입니다. 갑자기 돌출된 상황이라든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든지  그런 상황을 접하는 것을 힘들어 하고 불안해 하고 두려워합니다.권사님은 저보다 훨씬 담대합니다.  지난 간증설교에서도 언급했듯이 임계치를  넘은 상황으로 인한 두려움이 임하면 초죽음이 됩니다. 그런데 이보다  두려운것이 바로 잘나갈때, 풍요의 때, 힘이 있을때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때가 훨씬 재앙적인 두려운것이 임하게 됩니다.

다윗의 왕위의 축복된 시간이 얼마나 짧았습니까? 그 왕권 후반부는 그야말로 지옥같은 날들, 두려운 날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아들 암논이 딸 다말을 근친상간하고  그것에 분을 품은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을 사지로 몰아넣었었습니다. 솔로몬은 어떠합니까?우상숭배에 빠지고  한세대도  견디지 못하고 왕국이 분열과 쇠락의 길과 재앙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다윗과 솔로몬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서두에서 말했듯이  제가 겪은 것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설교준비하면서 교만을 많이 회개하였습니다.자기신뢰,  고집, 자기가  통제하려는  마음,  속교만이  많은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결국 제가 어려움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가 통제하려는 교만 때문이라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교만으로 인한 고난은 제가 속했던 선교공동체가 겪었던 것이기도 했고, 교회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일들이기도 합니다. 역사속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지금 러우 전쟁과 이스라엘 팔레스틴 전쟁,  중국의 대만에 대한 공격적 언사, 러우 전쟁으로 코너에 몰렸다 기세가 오른 북한, 여기에 더해 관세문제로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미국까지  ,힘으로 밀어붙치는 현실입니다.이들은 그 결국이 얼마나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잊은 듯 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유랑2000년과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을 잊은 듯 하고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륙으로 이주한 이주자들의 초심을 잊고 힘에 취한 듯이 보입니다. 중국, 북한, 러시아도 힘에 취해 그 파괴적인 결과를 잊은 듯이 보입니다.. 이십세기 초의 파시즘이 지배하던 파괴적인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불안 불안 합니다.힘에 취하면 심히 교만해짐을 두 눈으로 목도하게 됩니다.

그들은 힘자랑을 하지만 열국을 통안의 한 방울 물과 같이, 티끌같이 여기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해 진노의 그릇으로 쓰임받다 때가 되면 바로처럼 엎드러지게 될 것입니다. (사 40:15)태초에 교만으로 실낙원의 형벌을 받은 인류는 계시록에 나오는 세상나라 바벨론의 멸망으로 끝나기까지 교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계18장)

최근에 제가  기도할때 여러역사와 상황에서 왕들과  나라와  단체와  개인에게  겸손할때 부어졌던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사라진예가 많은것을 보고 마음이 상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마음에 하시든 듯 하였습니다."그래서 나도 너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축복하시고 은총을 베푸셨는데 교만으로 무너지는 것을 수도 없이 보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니  깊은 통회의 심정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색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태초부터 종말의 때까지 그 택한 사람들에게 은총과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샬롬의 삶을 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만이  이를 가로 막고 무너지게 하곤 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태초의 죄악인 교만이 저 심령깊이 박혀있는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고난의 상황에서는 그 상황에서, 풍요의 상황, 힘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 상황에서 얼마나 교만해지기를 잘합니까? 우리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가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교만때문 아니겠습니까? 잘나갈때 교만해지는 것도 자기가 잘나서, 잘해서 그리된줄로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현상에 대해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들교수도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일명 "능력주의"허상에 대해  조목 조목 지적했음에도 좀처럼 능력주의의 기세는 꺽일줄을 모릅니다. 이때문에  스스로 두려운 상황으로 걸어들어가려 합니다.

두려움은 그 대상을 제어하거나 통제하려고 해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근본 방향을 겸손히  하나님께로 돌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나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욥과 예수님의 예에서 보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자라가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자라갈때 두려움에서도 서서히 벗어나 은총과 축복과 샬롬의 삶을 살게 될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말입니다.

솔로몬의 융성기의 경험과 그의 교만으로 인한 실패에서 동시에 울려나오는 말씀,"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음성을 마음깊이 들읍시다. 하나님은 창조주권자이시고 우리는 피조물된 , 티끌에서 시작해서 재로 마감하는 존재임을 기억합시다.(욥 42:6) 그게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까지 두려움 많은 이 세상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복되게 사는 참지혜요 지식입니다. 그것만이  세상에서 잠시동안의 편안이 아니라 항구적인 평안,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가져다 주고 축복을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태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나라가 오실때에도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초나 지금이나 장래에도 복에 인색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잘 믿으며 삽시다. 정말 하나님 잘 믿읍시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매일 조금씩 진보하며 두려움에서 벗어나 잠언을 비롯한 성경에서 약속한  복된 인생을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음 설교는  12월 경에 소망에 관한 것을 하고 , 이어서 오늘 설교에 나왔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대표적인 예인 아브라함, 욥, 예수님 순으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설교 준비할때 리차드  존 미들턴의 아브라함의 침묵과 (류, 주 교수님이 추천글 쓰셨음)엘런 프랜시스 데이비스의 하나님의 진심이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구입해 읽어 보시실 권해 드립니다. 다음 설교위해 기도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욥기 42편 6절을 모티브로 지은 시 하나 읽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티끌과 재   (더스트 앤 애쉬즈) 소엽  이학상

생의 시원은 티끌
끝은 재

티끌에서 재에 이르는게 인생
시작과 끝을 보면 삶의 한가운데가 보이지

작은 알갱이
비로서 앓다 알은
앎의 삶을 살지

티끌은 티끌
재는 재일뿐인

시련에도
풍부에도
자유뿐인

그 삶에
지고의 복 있으리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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