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인 고 박경리 선생은 한 해의 마지막이 넘어가는 날 한 번씩 창자가 끊어지듯이 울었다고 한다.일찍 남편과 아들을 가슴에 묻고서 힘든 여성작가로서 글 작업에 매진하면서 마음속에 온갖 아픔들을 꾹꾹 누르고 있다가 토해낸 것인 듯 하다. 그런 후에 새 해가 되면 감옥생활 같은 글 작업을 꾿꾿하게 해나갔다고 한다.
아마도 토지의 여주인공인 서희는 그런 울음소리가 형상화되어 만들어진 듯 하다. 그 울음소리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마음속의 고통을 토해냄, 밀릴대로 밀려버린 감정과 복잡한 심내의 처리,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솔직한 인정, 여기서 엄출 수가 없다는 결의 다짐 등등이 담겨 있을 듯 하다. 그 울음소리는 1969년 부터 1994년까지 26년에 걸친 대하소설 토지의 완결로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예전에 상담을 배울때 속의 감정을 털어내는 것을 실습하면서 실로 다양한 사람들의 생생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용서와 분노에 대해 배울때 ,분노를 털어내는 시간이었었는데 ,정말로 화의 독기를 토해내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관계의 회복을 위한 첫 단계가 바로 속에 담아 놓았던 묵은 감정을 토해 내는 작업이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그러하지만 집단적인, 사회적인 차원, 보다 넓은 차원에서도 그런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남아공의 경우 흑백분리정책의 과오에 대해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만들어서 그런 작업들을 했던 선례가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 가족을 죽인 백인 경찰관을 용서하는 사건도 있었는데 , 실로 감동적이었다.
울음소리가 속에 담아두었던 감정의 처리를 하는 것도 매우 유익한 기능이다. 보다 진일보한 역활을 할 때는 무엇인가 방향성을 가질때이다. 그것이 자신의 과업이든, 인생작업이든, 관계의 회복이든, 그 무엇이든지 말이다.
묘하게 연말에 그분의 오신 날이 들어 있는데 올해에는 그분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성서에는 그분의 울음내지는 울음소리에 대한 장면이 3개가 나온다. 죽은 나사로의 집에 가셔서 죽음앞에 우는 마리아와 조문객들을 보면서 죽음아래 고통하는 것에 대한 연민의 눈물(요11:35)이 그 하나다. 또 예루살렘성을 입성하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눅19:41) 그리고 마지막이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인 듯 하다.(눅22:44, 히 5:7)
그분도 인류구속의 대업을 이루어가실때 쉽게 쉽게 진행된 것이 아니다. 공식과 같이 수학적으로 논리적으로 말하기는 쉽지만, 그 과정 과정은 그분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또한 애통하는 눈물은 정말로 깊고도 깊은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첫 울음과 둘째 울음에서 마태복음 5장의 팔복중 하나인 애통하는자의 모습을 본다. 세번째 울음에서는 그 울음소리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면을 본다.
특별히 올해 연말 나에게는 세번째 그분의 울음소리가 시편 51편의 다윗의 참회의 소리와 겹쳐서 들려온다.(다윗이 우리아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가 죽게 되었을때 울기는 했다.(삼하 12:22).) 또한 시편 51편을 기초로 "Miserere" 라는 58편의 판화작품을 그린 프랑스화가 조르쥬 루오의 생애와 그림을 보면서, 그리고 , Allegrio Allegri 와 Arvo Pa"rt 의 성가곡 "Miserere"를(각 시편 51편과 130편 참회시를 기초로 만들어졌음) 들으면서, 마치 다윗의 참회의 울음소리를 입체적으로 , 현시대와 겹쳐서 듣는 듯 했다.
한 책을 통해서 선한 모습뒤에 깊은 어둠을 드리운 죄성의 모습을 보았고, 또한 한국 개신교의 깊은 어두움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어두움을 보았기때문에 그리 다가온 듯 하다. 또한 그것이 역사적으로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촘촘히 직조되고 쌓아 올려진 거대한 성과 같아서 구분이 되지도 않았고, 정말 벗어날 길이 없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었다.
다윗은 고된 연단을 통해서 그의 죄성이 어느정도 정화된 사람이었다. 그분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죄성의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보게 되었다. 그게 절망의 탄식과 울음소리를 내게 한다.
그러나 그속에서 그는 불쌍히 여기시는 그분을 보고 간구한다. 그 죄성을 훨씬 뛰어 넘는 그분의 용서와 회복과 새로움을 본다.
나 또한 겟세마네에서 통곡하신 그분의 울음소리와 그 후에 십자가상에서 외치신 그분의 가상칠언,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 놓으신 용서와 회복과 새로움속에서 가늠할 수 없는 자비와 긍휼의 모습을 본다.
지난 한 달여의 시편 51편을 묵상하며, 그분의 오심을 묵상하며 흘린 감사와 참회의 눈물은 ,충분히 긍휼히 여기심을 받았다. 전혀 희망이 없는 모습을 나와 개신교회와 세상에서 볼지라도, 근원적으로 그 보다 더 가늠할 수 없는 모습의 다른 모습이 아님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희망을 보고 건다.
에덴동산의 반역의 역사와 수도 없는 역사의 배반과 죄성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제것 이끌어 오시고 그분안에서 이미 이루신 새 하늘과 새 땅의 회복, 그분의 형상이 회복된 새 피조물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계시며, 인도하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끼며 새해를 맞이하고자 하게 된다.
다윗처럼 이 기도를 새해에 늘 드리고자 결심하게 된다.
Miserere(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새해에도
남은 생애에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통하며 참회하오니 나를 긍휼이 여기소서
교회의 촛대를 옮기지 마시고 긍휼이 여기소서
다시 한 번 회복과 기회를 주소서
굳건한 영
자원하는 영
상하고 통회하는 영을 앙망하오니
임재하여 주옵소서
다시한번 간구하오니
나를 긍휼이 여기소서
Miserere Mei Deus
#울음소리
#슬픔의 사람
#미서레레 Miserere
#눈물




'성경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슬초 (0) | 2021.05.16 |
---|---|
코로나 시대의 단상 (0) | 2020.12.19 |
Miserere(불쌍히 여기소서) (0) | 2020.12.13 |
나의 푸른 참올리브나무 (0) | 2020.11.29 |
2020년 8월 30일 주일 계시록 설교 (2) | 2020.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