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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수 featured by cross 소엽 이학상
유럽 중세 그림전이 서울 명당 성당에서 열렸다. 유독 한 그림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림은 유화도 아니고 퀼트처럼 짜인 헝겁조각들이 조각보처럼 다양한 색감으로 모아져 하나의 그림처럼 되어 있었다. 조각보에는 유독 핏빛을 띤 다양한 열십자 모양이 수 놓아져 있었다. 예서체 십자무늬, 휘어진 나무 십자모양도 있었다. 언덕을 그린듯한 조각보에는 핏빗깔 나는 철십자 모양의 작은 십자무늬가 유난히 많았다. 그림을 호기심으로 뚫어지게 보다가 그만 그림속으로 상상속에서 빨려들어가 버렸다.
여기가 어디지? 요즘 유투브에 많이 나오는 시간 여행 드라마 속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림속 시간, 중세의 시간으로 유체이탈 한듯 가 있었고 인터스텔라의 다차원뷰를 보는 것 같았다.
뾰쪽 솟은 중세성당건물 옆에 한 마을이 보였다.그 마을은 대대로 다양한 십자가를 만드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철을 정교하게 잘 다루어 다양하고 수려한 철십자가가 유럽곳곳으로 팔려 나갔다. 특히 무슬림 몇 집과 유대인 몇 집, 그리고 조금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의 세공은 철십자가를 명품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렇케 대대로 오손 도손 웃음꽃 피며 평화롭게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날 ,왕실 비서실에서 사람이 나와 촌장을 만나 전했다. 앞으로는 철십자가만 만들고, 그것도 작은 칼모양으로 아래 긴부분을 날카롭게 만들라고 했다. 그리고 유대인과 무슬림과 프로테스탄트들을 마을에서 추방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전쟁시 부족한 칼을 대신하기 위해서고, 미래의 적을 추방해 후환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을시 마을을 없애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마을엔 날벼락이었다. 가톨릭인 촌장은 각 집의 대표들을 모으고 의논에 의논을 거듭했다. 갑론을박의 격렬한 의견들이 오갔다. 이 기회를 잡자는 가톨릭 집들의 의견도 있었고, 어떻게 십자가로 칼을 만드냐고 말하는 집도 있었다. 고성이 오가고 멱살을 잡고 싸우기도 했다.그러면 애들이 울고 부인들이 울며 뜯어 말겼다. 그날은 온 마을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난뒤 마을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그들중엔 절대로 십자가로 칼을 만들 수는 없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유럽과 다른 대륙으로 흩어졌다.나중에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 마을은 가톨릭만 남아 철십자가 칼을 만들었고, 조금 먼 곳으로 갔던 프로테스탄트 집들도 그곳 군주의 명대로 철십자가 칼을 예리하게 만들었단다. 무슬림은 원고향으로 가서 철십자가칼 대신 왕의 명대로 진짜 검을 만들고 살았다. 유대인은 돌아갈 고향이 없어 떠돌이처럼 이곳 저곳을 돌며 방랑자들 신세가 되었다고 전해졌다.(지금은 2000년 유랑의 트로마로 인한것인지도 모르는 안전,security 에 대한 집착에서 나오는 광기어린 전쟁과 살육을 벌이는 아이러니라니..,)
조각보위에 핏빛이 도는 철십자가는 사실 철집자가 칼이었다. 그것에 당한 사람들을 보고 무명의 사람이 한땀 한땀 피눈물을 흘리며 오랜시간 수놓은 핏빛 물들은 조각보 그림이었다.
나는 곧 현실에 돌아왔다. 높이 솟은 명당성당 첨탑위 십자가가 갑자기 십자가칼로 보였다. 순간 무엇엔가 찔린 듯 움찔했다. 속으로 조용히 되뇌였다. "아무리 그래도 십자가를 칼삼아 사람을 찌를 수는 없지. 그분이 달리셨던, 달려야만 했던 그 십자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