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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실아 소엽 이학상
진실 신실 절실아
나에게
늬들의 향내좀
입혀도
눈앞의
현실이 엄중하구나
세상에 험한 파도가 이는구나
삼실아
나의길에
도반이
되어도
차갑고
앞모를 길
늬들이
길동무 되면
구만리 길도
맘편히
옳게
발
딛으며 걸으리
p.s: 지난 주말에 류동규 교수님(최종원 교수님과의 연으로 연결) 의 김교신, 백년의 외침 , 북톡겸 ,강의에 다녀왔다. 강의의 끝은 "신실의 덕을 공동체의 윤리로 삼은...전적 기독교였습니다." 그런데 전적 기독교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c.s 루이스 , 순전한 기독교는 있는데, 좀 다름)모르겠다 하셨습니다. 저도 나름 추론하다가 주말에 읽은 "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에서 조금은 얼개를 그리고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pp279)
그런데 더 다가온 것은 책의 본인 소개글에 나온 가족(자녀)이야기였습니다.(이는 책을 보시거나 강연 구독을). 저의 가까운 친족중에도 같은 어려움이 있는 아이가 있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 실존적인 숙제가 책의 시작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아픔(저는 통증으로 표현)은 시든, 평전이든, 글의 동인이 되는 듯 하고 머리가 아닌 가슴속에 고인 글이 흘러나오게 되는 듯 합니다. c.s루이스도 삶의 고통에 대해 늦은 나이에 만난 아내 조이를 암으로 잃기전하고 후에 매우 다른 글로 표현합니다.(미들턴, 아브라함의 침묵, 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pp334)
류교수님의 글과 말에서 무언의 그 무엇인가가 전해진 시간이었습니다.
깨달은 두 가지.
저자의 육성을 듣는 것이 책을 10번 읽는 것 보다 낫다는...
류씨 성을 가진 분들 중에 훌륭한 저자가 많다는...
적어도 제 주변에는.~^^
(이 모임을 주최한 아카데미 동행의 오인용 목사님, 반가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