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성찰

質問力

美親세상 2020. 5. 20. 14:22

질문하는법이나 기술, 유익에 대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다.본래 교육(Education)이라는 말의 어원도 ''E(out)밖으로 Duco(ducare, drawing) 이끌어내다 .'' 인 것을 보면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것을 통해 그사람 안의 무언가를, 혹은 품었던 질문의 답을 끄집어 내는 것이 교육의 본모습인 듯 하다.

그런데 이즘 질문에 대한 책들을 보면 무엇을(what) 어떻게(how) 류의 답을 구하는 다소 실용적이고 생활속 문제들에 대한 답을 구하는 질문들이 주류를 이루는 듯 하다. 일정부분 유익한 면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왜(why)에 관한 질문, 특히나 존재나 근원,본질에 대한 질문은 별로 던지지도 않고, 설사 던진다 해도 금새 시들 시들 해지곤 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여러 체인에 연결되어 무성영화에 나오는 찰리 채플린 처럼 돌아가는 현실에서 질문을 차분히 , 끈질기게, 오래도록 던지기가 녹녹치가 않다.

고백록의 탄생배경이 되는 어거스틴의 질문도(대략 하나님은 누구시고 저는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 수많은 역저를 만든 본회퍼의 질문도(대략 비종교적인 그리스도인은 가능한가?라는 질문) , 만약 그들이 현시대를 살았다면 가능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어찌보면 현시대는 네이버등의 포탈에 질문은 넘치지만 질문의 맷집, 질문력은 갈 수록 약해져 가는 세대 인 듯 하다. 나부터도 그렇다.시간이 없다는 것이 주된 변명의 레파토리다.

그런데 코비드19가 많은 어려움과 재난적인 고통을 주고 있는 가운데 이 근원적인 질문을 자극하고 시간을 강제로 배당하고 하도록 한다.
이시기가 본질과 근원에 대한 질문력을, 평소에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질문을 심화하는 질문력의 근육을 잘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이시기에 그런 질문 하나 던지고 질문력을 키워본다면 조금더 심원한 답을 찾아가는 새힘이 생겨나지 않을까?

다시금 30년도 더된 마음속 질문을 다시금 조심스럽게 끄집어 내어 질문을 던져본다.
코비드 19 사태가 강제로 만들어준 성찰의 시간속에서 허약해진 질문력의 맷집을 키우면 무언가 질문에 대한 정리들을 끄집어 낼 수 있지 않을까?
2020,5,20